나의 환갑나이 인생을 되돌아 보면, 시위가 한창 일어났던 70년대 80년대를 살아왔지만, 나는 그런 대열에 한 번도 동참한 적이 없었다. 그럴만한 인과 연이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환갑이 되는 그 날부터 시위현장에 참여하게 되더니, 어제는 특정인을 옹호하는 입장( 어려운 입장에 처한 분을 지지 )에서 침묵시위에 가담하게 되었다. 두 집단이 서로 생각(의견)은 다르만,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들이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그 순간만은 시위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렸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제 그 현장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본 회의가 개최되기 약 30분 前, 우리 단체는 상대 단체와 몸싸움과 언쟁을 벌이다가 집행부의 지시로, 일단 우리가 선점하고 있던 좋은 자리를 상대측에 내주고 4층 법당(대웅전)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의 시위 기본지침은 침묵, 묵언으로 시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편이 시비를 걸어오더라도 응하지 않고, 침묵하면서 말과 행동을 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상황을 접하고 보면 그게 쉽지 않다. 그 순간 집행부에서 판단을 지혜롭게 한 것 같다.
화가 난 상대측 일부(아주 소수인원)는 4층 법당까지 올라와서 자리를 반반씩 나누어가지자라고 제안을 한다. 절대 다수이고, 우리가 선점한 자리까지 내주면서 피신한 입장에서 그런 제안까지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상대측 소수의 신도들은 법당 입구에 자리를 잡고 피켓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내가 앉았던 입구 뒷부분은 서로 듬성듬성 섞여서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불자, 우리는 한 형제같은 분위기를 연상하게 되었다. 아래층에서 있었던 몸싸움이 법당안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피켓을 양손으로 들고 자리를 잡고 있는 상대측이 안쓰러워보였다. 우리측에서는 상대적으로 몇 개 안 되는 피켓을 법당 바닥의 자기 앞에 내려 놓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상대측의 피켓 내용을 보면 아주 점잖은 표현들이었다. 여느 시위와는 판이하게 달라보였다. 이는 불자로서 아주 바람직한 의사표현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피켓으로 표현한 것이지, 과격한 표현을 한 것이 아니었다. 맨 처음, 상대측의 이 부분이 맘에 들었다. 정말 불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측의 피신을 결정한 집행부도 지혜롭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측 스님의 주도로 먼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합송하였다. 후반부에는 석가모니불 정근으로 이어졌다. 물론 우리측과 상대측 신도들이 다 함께 합송을 한다. 상대측은 소수여서 의도적으로 더 큰 목소리를 내는 듯하였다. 내가 자리 잡은 곳에는 상대측 소수 인원들과 함께 양측 신도들이 섞여서 자리를 잡았다. 바깥 마당에서는 상대측에서 마하반야바라밀을 목탁에 맞춰 시위자들이 합송을 하고 있다. 자기 목소리가 잠시 멈추는 순간에 상대측의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들린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는 순간이 포착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내가 쉬고 멈추는 그 순간에 일어났다. 내가 멈추면, 상대방이 들린다. 오늘 이 순간 각자의 생각과 입장은 달라도, 우리는 같은 부처님의 제자다.
"정말 불자답다."(금강경의 "선재 선재"라는 문구까지 떠오른다), "아름답다.", "신비롭다.", "이럴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그 순간 올라왔다. 방금 몸싸움을 벌이던 그 현장에서 윗층으로 피신하여 자리를 잡고, 다라니 염송하기까지 불과 십여분남짓한데, 지옥에서 극락으로 바뀐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내심 흐뭇하고도 환희심에 잠시 올라왔다. 오늘 큰 불상사는 없겠구나, 회의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이번 이사회의 의사결정을 양측에서 수용해주면, 이 사태가 여기서 멈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라니 합송 후에는 잠시 명상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평소와는 달리 두 눈을 뜨고 석가모니 본존불을 향해 질문을 드렸다. "석가모니불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또한 "부처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화두처럼 들었다.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이 생각났다. 우리는 한 형제인데 잠시 생각이 달라서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과격한 말과 행동으로 서로 상처를 받거나 입히지 말자. 우리측 사중의 뜻이기도 하다. 아침에 신신당부한 것이 시비에 휘말려 언쟁을 벌이거나 몸싸움을 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탐.진.치 삼독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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