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비가 자주 내리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온 기분을 느낀다.
8월 초순의 찜통 더위는 물러나고 서늘한 가을 기운이 들어왔다.
오늘 저녁 먹고 한내천을 걷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굵은 소나기를 만났다.
소방서 부근의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굵은 빗방울 바라보고 있는데, 내 머리속에는 어릴적 고향생활이 떠올랐다.
삿갓을 쓰고 등교길에 바람이 불어 삿갓이 모내기한 논에 떨어졌다.
삿갓 주으려고 고무신을 벗고 논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낭만으로 이런 것이 떠오르지만, 그 당시 어린 마음에는
고통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순수하게 대나무와 반투명 청색 비닐로만 된 우산은 바람에 견딜 수
없어서 뒤집어지기 일수이고, 바람이 좀 강하면 금방 대나무 우산은
망가져서 버리기 일수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삿갓과 도롱이가
우산과 우의를 대신하였다.
늦 가을에 벼를 수확하여 집 마당에 여기저기 쌓아 놓고, 볏가리를
쌓아 올리다 멈춘 상태에서 노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자, 아버지는 미친 듯이 일어나 온 가족들에게
소릴 지르면서 튀쳐나가시어, 바깥 마당 볏가리로 올라가서 빨리
볏단을 볏가리로 던져 올리라고 고함을 지르시던 기억도 떠오른다.
하교길에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면 부근에 있는 원두막 아래로 비를
피하고 피할 만한 곳이 없으면 천으로 싼 책 가방을 옷을 벗어서
둘둘말고 온 몸으로 꼭 껴 안은 채 달음박질 치던 기억도 난다.
한 여름 소먹이러 산으로 갔다가 소나기를 만나면 피하려고 생각지
않고 그냥 샤워하는 정도로 마음을 내려 놓으면 그것만큼 시원한
것도 없다. 어차피 노팬티 반바지에 런닝셔츠 하나에 고무신이
몸에 걸친 전부 이기에 소나기가 그친 후에도 계속 이동하다 보면
어느새 옷은 다 말라서 새옷처럼 되어 있다.
지금 내리는 이 소나기도 맞지 않으려고 하니 불편하지, 그냥 맞으면서
걸어보면 의외로 시원하고, 비 피하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맘이 얼마나
편안한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분을 모른다.
이슬비를 맞으면서 귀가하였다. 황순원의 소나기 소설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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