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바쁜 일과로 산행이나 산책을 못해 몸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제.어제 볼 일을 미리 보고 오늘 아침에는 겨울철 산행준비를 단단히 하고 집을 나섰다. 아주 오랜만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구름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구름산 입구에는 대선 기호1번 선거운동으로 열기가 뜨겁다. 산을 오르는 내내 시내에서 확성기를 통해 기호1번과 2번의 선거유세 소리가 멀리서 큰 소리로 들려왔다.
올해는 초겨울에 연이어 내린 눈이 제법 쌓여서, 등산로에는 다져진 눈으로 아이젠이 제격이었다. 올라갈 때도 내려올 때도 아이젠 하나 믿고, 겨울 산행 한 번 잘 하고 기분 좋게 귀가하였다. 눈이 잔뜩 쌓여 있어서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평소와 큰 차이 없이 3시간만에 구름산을 종주하고 돌아왔다. 산을 오를 때는 몸의 열기로 추위를 느끼기 보다는, 가끔 불어오는 매서운 겨울 바람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등산객은 줄어 산행하기가 더 좋았다. 발바닥으로는 아이젠이 다져진 눈에 찍히는 촉감을 느끼면서, 귀로는 "뽀드득"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얀 눈을 벗 삼아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걷는 발걸음이 기분에 따라 가볍게 느껴졌다. 내가 거울 없이 내 몸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그림자, 그 그림자는 영롱하게 작은 빛을 발산하는 하얀 눈 위에 나타나 나와 함께 걷는 동행자, 하얀 눈 위의 그림자로 인해 마치 내가 순백의 마음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자존심을 좀 더 버리고 하심하는 마음으로 순백의 마음을 가진 그림자처럼 살아가면, 행복한 사람이 되려니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이제 임진년 한 해를 마무리 해야 할 12월에 들어서서 한 해를 잠시 되돌아 본다. 작년 이맘쯤 한 가지를 정리하였고, 올해도 한 가지 더 정리를 하려고 하고 있다. 한편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또 본다. 이렇게 주변환경의 변화에 따라 정리할 것은 정리를 하고, 새롭게 벌려야 하는 것은 벌려간다. 세월따라 나를 찾아오는 변화를 반갑게 맞이하고, 인연따라 순리따라 살아가면, 내년 한 해도 올해처럼 평온한 한 해가 되리라 기대해 본다.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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