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주말에는 알람을 끄고 지내는데,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든 탓에 눈을 뜨고보니 새벽 4시반, 어제 못간 새벽예불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갔다. 서둘러 주차장에 도착하고 보니 5시 정각, 쇠종소리와 스님의 게송이 함께 들려온다. 조용히 맨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여느 때처럼 천일 새벽기도에 동참하였다. 석가모니불 1000염을 하는 동안 가까스로 108배를 마치고 나니, 목줄기와 등줄기에는 땀 방울이 흘러 내린다. 밖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고, 법당의 출입문은 사방으로 활짝 열려 있어, 서늘한 구름산 새벽 공기가 법당을 가득 메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당 천정을 한 번 쳐다 보았더니 선풍기는 멈추어 있었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신도들이 모두 귀가한 다음에 날은 밝아오고, 빗줄기는 가늘지도 세지도 않고, 대웅전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물 소리가 도량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먼저 법당 뒷편으로 행선을 하듯이 조용, 조용 걸었다. 대웅전 처마가 높은 탓에 낙수물 소리가 제법 크다. 뒷편 산책로에 있는 정자는 고요함 속에 혼자서 외롭게 있었고, 산책로 주변에는 백일홍의 붉은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약사여래불이 있는 곳에서 잠시 서서 입정을 하다가 다시 되돌아 법당 앞으로 나섰더니, 어간문 앞에 있던 작고 흰 개가 나를 보고 낯설었던지 마구 짓어대기 시작한다. 순간 이 놈이 .... 하곤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조그마한 놈이 종무소와 신도회 사무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법당에도 들오곤 하면서 여러 신도들과 접하면서 사람의 손을 탄 놈이 사람을 보고 짖어 대다니....... 아침 공양중이신 스님들 신경쓰일 것 같아서 도량 산책을 멈추고 그 놈에게 쫓기다시피 비를 맞으며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거니 USB에 저장된 올드 팝송이 흘러나온다. Sound of Silence, 이 한 곡을 주차장에서 듣고 있는데, 차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와 어우러져서 조용하게 음악소리만 나의 귓가에 머문다. 일상생활이 도시잡음 속에 복잡한 마음으로 정신없이 일과를 지내는 데 비해서, 밖은 약간 어두운 편이고, 빗방울 소리와 나즈막한 음악 소리에 마음까지 고용해지니, 이것이 '적멸' 상태인가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적막강산'이라는 단어가 일순간 뇌리를 스쳐간다. 정말 고요하다. 주변 공간이 고요하고 내 마음이 고요하니, 세상 만사가 모두 고요한 가운데 평온해 보이기만 한다.
귀가하기 위해 출발하는데 이어서 들려오는 노래는 Anything that's part of you였다. 가리대 삼거리쯤 왔을 때에는 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이어진다. 이 세 곡의 노래를 들으려고 가속 페달을 적게 밝으면서 천천히 귀하였다. 절에 갈 때에는 마음이 급해서 페달을 무지 바쁘게 밟았지만 귀가할 때에는 천천히 천천히 ..............시계는 늘 일정한 속도로 시간을 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에 갈 때에는 왜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그리고 한 곡 더 들으면서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천천히 오는데 시간이 왜 그렇게 느린지........ 시간이 빠르고 느린 것은 내 맘에 달려 있다는 것을 오늘도 느꼈다. 이것이 모두 공한 것이어서 내 맘이 움직이니까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는 시간마져도 가변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것으로 유추해서 가늠해볼 수 있다. 우리의 귀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한정되어 있고, 우리가 볼 수 있는 빛과 크기의 영역도 제한되어 있다. 들리는 것만이, 보이는 것만이, 옳다고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둔감한 이 몸뚱아리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울타리 안에서 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더 많은 소리가 있고, 더 많은 미생물들이 나와 같은 공간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은 왜 알람을 맞추어 놓지도 않았는데, 4시반에 눈이 뜨여서 계획에도 없던 새벽예불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오늘 오후에는 자주 있지 않은 '임시총회'가 있다.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신도회 조직을 따라가지 못 하는 신도회칙을 개정하기 위해서 모든 임원들이 모여서 개정안을 가결하는 큰 회의가 준비되어 있다. 이 모든 행사가 여법하게 진행되어 금강정사 신도회의 발전이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데 기여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2009. 8. 30 일요일 이른 아침에 고요함을 즐기면서 ( 내 블로그 600호 글, 92,168명이 다녀간 기념 ).......
원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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