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왜, 부처님이 신도들에게 인기가 있을까?

圓鏡 2009. 7. 23. 21:36

 

 

불자들이 부처님을 좋아하는 이유가 많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묵묵히 그 어떤 불자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가 하는 말(기도,서원,소원,바램 등)을 끝까지 다 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상대방보다는 더 말을 많이 하고 싶고, 심지어는 상대방이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 내가 할 말을 생각하느라고 상대방 말을 듣지도 않고, 못 들어서 동문서답을 하거나 서로 자기 입장만 늘어 놓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혹자는 왜, 입이 하나 있고, 귀가 둘이겠는가라고 경청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좀 처럼 수행되지 않은 중생은 상대방 말을 듣기 보다는 내가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한다. 심지어 어떤 사안에 대해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상대방 말을 많이 들어주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에게 애로사항을 털어 놓으면서 자문을 구하는 경우에도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면 자기 스스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경청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실천을 하지 못 한다. 수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말을 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경청하는 기술은 더 중요하다.

대화의 소중함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습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라. 그러면 삶이 향기롭고, 매사가 부드럽게 풀려갈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말을 할 때에는 상대방의 기분과 입장을 배려해서 말을 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이해를 하고 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콕콕 찌르면서 말을 하거나, 자기 잘못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려는 양 말을 건네면 상대방도 기분이 좋아질리가 만무하다. 예를 들면, 당초에 내가 이렇게 하기로 했는데, 그 동안 상황.사정이 이렇게 바뀌어서 할 수 없게 되었다. 대안으로는 이렇게 하는 방안과 저렇게 하는 방안이 있는데, 당신이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데 어느 누가 거절하겠는가?  자기가 하기로 했던 일에 대한 정황은 덮어두고 막무가내로 이것을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한다면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당초 한 약속이 있는데 그것은 없었던 것처럼 언급하지도 않고, 밑도 끝도 없이 ( 당신이 이 일을 ) 어떻게 할 것이냐? 라고 다그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해불택세류, 대도무문이라는 말과 같이 무조건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사사건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지, 삼복의 무더운 날씨에 기분 좋게 함께 일을 하는 도반들이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다. 이것도 나의 업장소멸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서 당혹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퇴근하려고......... 원경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