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동년배

圓鏡 2009. 2. 11. 22:00

 

 

일년에 한 두 번 가게 되는 이발소가 있다. 내가 처음 광명에 정착하면서 살았던 아파트 단지 상가내에 있는 작은 이발소다. 입주하던 그 당시에 문을 열어서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금년에 21년째 되는 것 같다. 가끔 주말에 가보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이발사는 혼자이다 보니, 한 시간 이상 족히 걸리는데, 오늘은 모처럼 평일에 한 번 가보았더니 이발소 안에는 아저씨 혼자서 캔버스를 펼쳐놓고, 붓을 들고 유화(정물화)를 그리고 있었다. 의외였다. 주말에는 손님들이 많은 편이니까 부부가 함께 이발을 하는데, 평일에는 손님이 없어서 그림을 그리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이 없는 가게에 혼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보였다.

 

나이가 내 나정도 되어 보이는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미술학원에서 기본적인 뎃상정도를 별도로 배웠다고 한다. 수채화보다는 유화가 더 재미있다고 하였다. 보기 좋다면서 나는 시간이 되면, 전자 오르간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아주 신나는 목소리로 톤을 높여서 노년의 취미활동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을 피력하였다. 색소폰을 배울까하다가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배우고 있다고 한다. 노인정에 가끔 가보면 노인들끼로 화투놀이나 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가끔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분들을 보면, 노년에 건강과 취미가 얼마나 중요할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그 취미활동이 부부간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젊은 시절 살아가기 바빠서 앞만보고 열심히 살아가다 어느 날 자식들 출가시키고 정년퇴직해서 현역에서 물러나게 되면, 건강도 좋지 않고 마땅한 취미도 없는 ......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여유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아주 따분하게 긴긴 노년기를 방안에서 보낼 수 밖에 없다.

 

지금은 평균수명을 80으로 보고, 내가 노년기에 접어들면 평균수명이 그보다 더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30년은 더 살아야 한다. 노년을 건강하게 보내는 방법으로서 취미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같다. 그 취미가 운동일수도 있고, 문화활동일수도 있을 것이다.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모여서 취미활동을 하다보면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새로운 정보도 입수하게 되고, 때로는 그 실력을 봉사활동하는데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웰빙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웰다잉이라는 것을 요즈음 내 주변을 통해서 느낀다. 사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만 죽는 것은 그보다 그 고통스러운 것 같다. 건강하게 살다가 깨끗하게 떠나는 것이 큰 복이라는 사실을 부쩍 느끼게 된다. 말년에 병고로 고생하는 이웃을 보다 보면 더욱 더 이런 생각이 든다.  

 

평소 주말에 가보면 신문 잡지를 들고, 30분이상 기다리다가 의자에 앉으면 졸다가 스스로 깜짝놀라서 깨곤하였는데, 오늘은 단 둘이서 동년배로서 살아가면서 느낀 소감을 왕성하게 교환하느라 졸 여가가 없었다. 기다림도 없이 기분좋은 대화를 나누면서 이발을 하고, 여행준비도 하였다.

 

2009. 2. 11 수요일 윷놀이대회 후 삼일째 되는 날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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