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라는 말 그대로 요즈음 날씨가 무척 포근하여 마치 봄이 온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입춘은 24절기 중의 하나로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있는 절기이다. 먼저 입춘이라고 하면,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붓글씨가 크다란 대문짝에 인사를 하듯이 서로 마주보고 붙어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올해는 예년보다 더 많은 신도들이 모인 법회, 법회 후 점심공양을 여유있게 하려고 줄도 서지 않고 있다가 배식이 끝날 무렵에 줄을 섰더니 준비된 음식이 다 떨어졌다고 해서 떡 몇 조각으로 점심공양을 대신하였다. 보통 점심공양 음식이 남는 편인데, 오늘은 모자라는 것을 보면 예년보다(예측한 것보다) 신도들이 더 많이 참석한 모양이다. 왜 더 많은 신도들이 모였을까? 세계 대공황 때문일까? 날씨가 좋아서 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였을까?
입추의 여지 없이 신도들로 가득 들어찬 대웅전, 어간도 신도들로 차고, 양쪽 출입문에는 서서 법회에 동참하고, 400명는 족히 되어 보이는 신도들이 천수경을 시작으로 법회를 보는데, 확성기를 통한 주지스님의 염불 목소리도 평소보다 더 힘차게 들렸다. 나는 처음에는 천수경 독경을 대중들과 함께 하다가 입을 다물고, 눈으로 독경을 하면서, 주변에서 아름다운 화음으로 들려오는 염불소리에 잠시 삼매에 든 기분을 느꼈다. 아 ! 이래서 혼자서 수행하는 것과 대중들과 함께 수행하는 것에 차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에 잠시 눈을 상단으로 촛점을 맞추고 불보살님들을 찬찬히 보았더니, 주불과 협시불의 표정이 평소보다 더 밝아보였다. 특히 평소에 보지 못 했던 두 가지 사실을 파악했다. 가끔 석가모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은 남성일까 여성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했는데, 오늘 불상을 가까이서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니까, 여성상이었다. 특히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상의 손가락을 얼마나 가늘고 예쁜 여성의 손가락처럼 묘사하였는지, 상단의 불보살님의 입술 루즈 색상은 짙은 붉은 색이어서 마치 여성들이 화장을 한 듯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남성상으로 불상을 만들었을텐데, 내가 보기엔 여성상으로 보였다. 관세음보살상의 손가락은 몸집에 비해서 너무 가늘고 예쁘게 빗어 놓았다. 이것은 조각가의 일방적인 마음일까? 우리 모두의 생각을 조각가가 그렇게 표현한 것일까 궁금했다.
입춘기도회향 법회에는 해마다 다라니를 나누어준다. 3장 내지 5장씩 원하는 수량만큼 배포를 한다. 늘 더 달라는 분들도 있고, 배포하다 보면 먼저 받으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한데, 금년에는 비교적 질서를 잘 지켜 크게 혼잡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앞에서부터 배포를 하다보니, 맨 뒤에까지 배포가 끝나지 않았는데, 앞에서는 일어서서 나가시는 분들이 한 두 분씩 생기면 도미노 현상이 여기저기 일어나기 시작한다. 출입구는 맨 뒤에 있으므로 좌복정리할 자리마져도 없는 상황에서 맨 뒤에 있는 분들은 아직 다라니를 받지 못해서 앉아 있고, 앞에서는 일어서서 좌복까지 정리하려고 하니, 혼란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내년부터는 맨 뒤쪽 출입구쪽부터 다라니를 나눠주면 받으신 분들은 조용히 밖으로 나가시면 덜 혼란스러울 것 같다.
법회를 마친 후에는 32기 기본교육 도반 두 분을 오랫만에 만나뵙게 되어서 무척 반가웠다.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도반(동기동창)이라는 게 이런 의미가 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상 우리가 동기동창이라 함은 나이가 동갑이고, 성이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기본교육 도반들은 이런 사회의 동기동창생들과는 사뭇 다른 것이 차이점이다.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우연히? 필연적으로?)만난 도반들, 무척 소중한 인연들이라고 생각되었다.
2009.2.4 날씨가 무척 좋았던 입춘기도에 참석하고 나서.........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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