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가한 토요일 오후 나절

圓鏡 2008. 2. 23. 13:30

 

아직 봄은 멀리 있고 겨울이 가까이 있나보다.

겨울을 막으려고 굳게 닫힌 창문을 뚫고,

바깥에서 풍악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그저께가 음력 정월 대보름인지라

전통적인 민속놀이인 윷놀이 판이 벌어지는 곳에서

들려오나 보다하고 밖을 내다 보았다.

 

이 곳 소하동에는 윷놀이 전통이 비교적 잘 전해 오고

있는 곳인 듯하다. 내가 살던 고향에도 어릴 때는 

설날부터 보름 동안은 원근 친인척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린다. 우리 마을 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

여기저기서 풍악소리가 들리고, 양지바른 마당에는

덕석을 펴 놓고 삼삼오오 윷놀이를 즐기던 모습이

선하지만 지금은 보기가 어렵다.

 

해마다 절에 가다보면 소하2동 동사무 입구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껏 윷놀이 목소리가 크게

들리곤 하였다. 금년에는 우리집 바로 앞에 있는

배드민턴장에서 윷놀이판이 벌어졌다. 농악대가

차가운 겨울을 멀리하고, 윷판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 주에는 첫 정기휴가를 나온 큰 아들의 바쁜 일정,

주말에는 법흥사로 성지순례를 다녀왔고, 

우리 절에서는 신도회 주최로 윷놀이가 있었다.

나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이 있어서 윷놀이에는

참석하지도 못 하였다.

 

지난 주내내 바쁜 일상생활이 지금은 멈춘 듯하다.

어제 오늘 천일 새벽기도에 동참하고, 오늘 오전에는

오랫만에 삼성산 삼막사 육관음전을 다녀와서 점심식사 후,

지금은 한가한 오후 시간을 집에서 혼자서 즐기고 있다. 

이렇게 가끔은 혼자서 조용히 지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즐거움 중에 하나인 듯하다.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깨끗한 디지틀 음악을 들으면서 지난 주와 오늘 일들을

잠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오늘날까지 이렇게나마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늘 즐겁게만 살아갈 수 없는 이 사바세계의 중생으로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며 고마워할 일들이 많은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새벽기도를 마치고 밖을 나서니 어둠이 가시고

주변이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공기는 차다기 보다는

상큼한 늦가을 날씨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였다. 

어제는 봄기운이 완연하였건만 저녁에 빗방울이 좀 있어서 그런지,

오늘은 완연한 겨울날씨이다. 낮에도 영하의 날씨에다

강한 북서풍이 불어댄다. 오랫만에 아침 식사 후,

산행준비를 하고선 집을 나섰다. 삼성산 초입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베낭을 메고 모자를 쓴채로 바람을 막기 위해서

그 위에 상의 외투에 붙어 있는 모자를 다시 뒤집어 썼다.

얼굴에는 새찬 산 바람이 불어대긴 하여도 조금 걸으면

체온으로 이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힘찬 걸을 시작했다.

 

내 바로 앞에는 중년 신사 한 분이 걷고 있고, 앞뒤를 봐도

아무도 없다. 이른 오전 시간인 데다가 갑작스럽게 날씨가

차가워져서 등산객이 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앞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걸었다.

 

고요한 산중에 가끔 북서풍의 매서운 바람에 겨울나무들이

울어대는 소리 외에는 적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박자는 맞지

않았지만 그 신사와 내 발자욱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꽁꽁 얼어붙은 개울의 얼음과 겨울을 나기 위해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새잎의 봉오리들을 관찰하면서 우주의 섭리를

한 번 생각해본다. 이러다 보니 앞서가던 신사는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혼자서 내 발자국 소리 들으면서 한적하게

산행을 하는 기분도 좋았다. 찬 겨울 바람은 나의 체온을 이기지는

못 했다. 얼굴에 불어대는 찬 바람은 어느새 시원하게 느껴졌다.

입에서는 연신 수증기가 밖으로 하얗게 뿜어져 나온다. 

 

그러다가 발걸을을 멈추면 마치 깜깜한 밤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듯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기분을 느낀다.

이런 분위기 속에 어느 한 곳에 집중하다 보면 먼 옛날 나의 어린시절로

잠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낀다. 이렇게 걷다보니 삼막사에 다다랐다.

먼저 육관음전으로 들어가서 삼배를 하고, 좌선을 잠시 하다가 오후 일과를

고려해서 바로 하산했다. 

 

20080223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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