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은 올 들어 가장 추운 영하의 날씨였다.
한 낮에도 영하의 기온으로 전형적인 겨울 날씨였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은 날씨가 계절에 어울려야
제 맛이 난다. 올 겨울 날씨는 유난히 포근한 것 같다.
평소에 끼지 않던 장갑까지 챙기고, 외투의 깃은 세우고,
추운 날씨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쁘게 한다. 모두들
목을 움츠리고, 고개를 숙이고,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발걸음을 어디론가 재촉하고 있다.
길거리 포장마차 안에 있는 솥에서는 하얀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고, 저녁시간 이 앞을 지나가던 배고픈 이들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따뜻한 국물 한 그릇에 오뎅 몇 개를
맛 있게 들고서 가던 길을 재촉한다.
방금 지하철 출입구 밖으로 막 나선 노부부는 겨울차림을
단단히 하였지만 연로하신 분들이라 이런 추위에 안스러워
보였다. 할아버지는 오렌지색 가죽 점퍼차림에 중절모를
쓰시고, 말라보이지만 야무져 보이는 작은 체구, 할머님은
털실로 짠 모자를 쓰시고, 원피스의 긴 외투를 입고 계신다.
지하철 출입구를 나서자 마자 할아버지께서는 글씨가 작아
잘 보이지 않는 휴대전화를 들고서 어디론가 전화를 여러 번
시도하셨다. 그러는 동안에 혼자서 서 있기조차 불편해 보이는
할머님의 손을 잡고서 끌다시피해서 가까운 곳에 있는 구조물을
향해 두 분은 잠시 이동하였다. 할머님께서는 두 손으로 그
구조물을 잡고서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 다시 전화를 걸고 있다.
이렇게 추운 날 저녁에 무슨 일로 걸음걸이조차 불편해 보이는
할머님을 모시고 밖으로 나서셨을까? 그나마 두 분이 함께
있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긴 하는데, 언젠가 두 분 중에 한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나시면 남아 있는 한 분은 어떻게 삶을 영위해
나가실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과거처럼 대가족이 한 집안에
모여서 살아가던 때에는 걱정이 덜하지만, 요즈음처럼 노부부가
한 집에 함께 살다가 한 분이 먼저 가시면, 혼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운 정도가 아니라 생활 안전이나 정신 안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한 감이 들었다. 그게
얼마 후에는 나의 문제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기왕이면 이럴 때에는 그 자식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외출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이나 처가에서 한 세대 두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할아버님이 연로하셔서 거동이 불편한 가운데에도 외출을 하시고자
하시면, 아버님이나 장인어르신께선 기꺼이 당신의 일정을 포기
하시고 할아버님 외출 일정에 맞추어서 모시고 나가셨다.
이런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시는 모습을 아름답게
생각하면서 보았던 나는 어떠한가 ? 나의 미래가 이렇게 되길
기대할 수도 없거니와 나도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 아버님과 장인어르신께선 손익상으로 보면 적자 인생을
살다가 가셨다고 봐야 하는가? 그건 아닌 것같다. 당신들이 당신들의
부모님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신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내가 당신들을
그렇게 제대로 모시지 못 하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지요.
아무튼 과거 전생에 어떤 인연을 맺어서 금생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 한 평생을 한 집에서 살아가는지 모르겠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정성과 물질에 대한 보상을 자식이 부모에게 다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은혜가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에게 손해를 보고, 그 자식은 다시 그의 자식에게
손해를 보면서 사람이 대를 이어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종족과 가족을 보존하고, 번성하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나 동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인가 보다. 그게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인 것인가 보다.
20061230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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