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3일간의 연휴를 즐기고 있다. 평소에 이틀간 연휴이던 것이 이번 주말에는 예수님 탄생 기념일이 덧붙어서 사흘간 쉬게 되었다. 연말이라 이래저래 모임도 잦은 데다가 어제는 내가 다니는 사찰에서도 송년법회를 가졌다. 평소와는 달리 긴 식순에 연말 분위기를 느낄 만한 식순들이 들어 있었다. 영상화면을 통해서 지난 일년 간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 크게 의미가 있었고, 종무소 담당자별로 지난 한 해 동안 사찰 살림살이 및 사업실적을 보고하는 자리도 이색적이면서도 돋보였다. 그리고 평소와는 달리 선곡된 두 곡의 음성공양, 게다가 남녀혼성 합창단 구성 등이 새로웠다. 그리고 격려사, 축사, 발원문 등이 식순에 추가 되어 있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되돌아 보는 법회를 알차게 진행하려고 사중에서 많은 노력을 한 흔적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식순은 과거 여느 해와는 분명히 달라진 것이었다. 특히 영상화면을 통해서 지난 한 해를 선명하게 기억을 되새기면서 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갔었다.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많이 변화하는 속에 나도 동참을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무상함을 느꼈다.
변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큰 변화 앞에서는 그 변화를 따르기를 거부하거나, 머뭇거리거나, 때로는 주저앉아 버리기도 한다. 세상의 삼라만상은 늘 바뀌어 가고 있다. 한 시도 멈추어 서 있는 법이 없다. 그런 가운데 발전도 있고, 때로는 퇴보도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내 주변의 삼라만상이 다 바뀌어 가고 있는데 나만 그대로 안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주변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 함으로 인해서 퇴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러면서 이 인류는 지금까지 문명과 문화를 이렇게까지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연휴의 맨 마지막 날인 크리스마스 휴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아내가 우리 세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가득 쌓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만 빼고 세 가족이 나누어 가지기로 하였다. 두 아들은 밤새워 가면서 거실에서 놀다가 아직도 자고 있다. 평소에 세 식구였는데 지난 주말부터 식구가 더 늘어서 지금은 네 식구이다. 나에게 주어진 선물은 나의 와이셔츠 두 장과 일주일치 네 가족 양말 빨래하는 것이었다. 두 아들에게는 각각 다른 선물들을 미리 분담을 해놓았다. 열흘 전부터 두 손목이 아파서 일상적인 활동을 하기에 불편한 아내가 이렇게 많은 선물을 쌓아 두고, 크리스마스 연휴가 오길 기다렸는데, 3일간 연휴 중에서도 결국 마지막 날까지 밀렸던 일들이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오랫만에 화장실 바닥에 쪼구리고 앉아서 와이셔츠부터 먼저 빨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양말을 빨았다. 그저께 토요일날은 작은 아들이 자기 와이셔츠 빨래하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나는 오랫만에 흔쾌히 나에게 할당된 일감들을 처리했는데, 두 아들의 기분은 잘 모르겠다. 최소한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엄마의 소중함이 뭔지 정도는 느꼈을 것이다. 나는 빨래를 하는 동안 어릴 때 고향을 떠나서 동생이랑 할머님과 대구에서 학교 다니던 시절, 그리고 3년 간 군복무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군에서는 자기 빨래는 당연히 자기가 하게 마련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때로는 고참 군복이나 소대장 내의까지 빨았던 기억도 난다. 두 달 후면, 두 아들이 모두 군 복무로 인해서 학업을 잠시 멈추고 입대를 하게 될 텐데, 지금까지 엄마에게만 의존하던 일상생활의 일부를 이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스스로 자기 빨래를 해보는 습관을 미리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아들은 내 뒤를 이어서 카펫을 몇 장 빨고 쉬고 있지만, 큰 아들은 자기 빨래를 놔두고 외출하는 바람에 아직도 선물을 그대로 쌓아두고 있다.
이론 교육과 함께 실습이 따라야 하듯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체험학습만큼이나 소중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내가 어떤 일을 해보고, 경험함으로 인해서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 배우고 말로 배우고 익히지만, 실제 체험을 해보는 것만은 못 할 것이다. 지난 봄에 우리집 근처에 있는 52사단 군 법당에 일요법회를 참석했을 때, 백문이불여일견이요, 백견이불여일행(行)이라고 나에게 강조하시던 어느 보살님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오랫만에 날씨도 포근해서 지금 마라톤이나 한 번 해야 겠다.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우리 가족들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선물을 주게 된 아내는 물론이려니와 그 선물을 받은 세 가족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20061225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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