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람이 살아가는 길

圓鏡 2006. 12. 17. 17:13

 

오늘 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보았다.

 

 

나는 늘 나의 길만 열심히 걸어온 것 같다. 다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오늘 위의 사진을 통해서 보았다. 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보면 순간순간적으로 장소에 따라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놓고 보면 중생들이 살아가는 이 사바세계는 고통의 바다, 고해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 길을 나는 오늘 보았다. 늘 번뇌.망상을 떠날 수가 없고, 그래서 마음이 늘 불안하고 불편하다. 잠시도 우리의 마음은 한 곳이 머물지 못 하고 바뀐다. 그럴정도로 늘 마음은 불안하다.

 

설령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수단으로서 윤회사상을 설법하셨다고도 하지만, 실제로 육도윤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사진이 바로 위의 것이다. 아라한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모든 생물은 육도윤회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윤회사상이다. 육도윤회 중에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제외하고 나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가장 순위가 높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늘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내가 전생에 어떤 업을 지어서 오늘날의 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할 수만 있다면 내생에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지금.현재 어떻게 살아가야 바람직한 길인지를 스스로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서도 안 되고, 다가오지도 않는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 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현재가 중요하다. 내가 현재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나의 모습과 내생에 내가 어떤 모습을 태어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방향정도는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이다. 어떤 원인이 있었으면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 곳에 팥이 날 수 밖에 없는 것이 진리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물론 콩이나 팥을 심고서 그것들이 싹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자연환경이 뒷 받침이 되어야 한다.

 

위의 사진에서 가운데 눈이 없는 자리, 그 가장자리에는 눈이 다져져 있다. 그 밖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무수한 발자국이 나있다. 이런 눈 길 위에 두 줄의 평행선을 긋고 지나간 할아버지는 지난 생에 무슨 업을 지었을까하는 생각이 귀가하는 내 발 길을 무겁게 하였다.

 

2006/12/17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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