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송년모임

圓鏡 2006. 12. 16. 20:56

내 블로그 문을 열고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작년 이맘 쯤인 것 같다. 흐르는 물과 같은 세월은 벌써 한 해를 보내고 연말에 다다랐다. 금년 한 해는 하심을 하면서 살아왔는가?  나를 낮추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얼마나 의식적으로 말과 행동을 취했는가?  적어도 내 블로그에 들어올 때마다 "하심"이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그 때마다 내 맘의 수행은 있었다고 생각된다. 최소한 이 블로그에 들어오면서 나갈 때까지 만이라도 조용히 나를 낮추고 참회를 하는 시간을 갖었다고 본다.

 

연말이면 의례히 잦은 술 자리, 금년에도 예년과 같이 직장과 사회단체, 학교 친구들의 모임이 자주 있게 마련이다. 그나마 내 나이 지천명을 넘은 이 시점에 음주 문화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 같다. 그러나 음주문화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도 하는가 보다. 잔 돌리기가 예전보다는 줄어 들었고, 2차 3차 .... 이렇게 해서 귀가를 못 하고 외박하는 그런 경우도 줄었고, 술 잔이 아니라 괘팍하게 술을 따르고 마시는 그런 분들도 주변에서는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그리고 요즈음은 신용카드가 있어서 그럴 일이 없는데, 과거 같으면 서로 눈치보다 돈이 부족하면, 반지나 시계를 잠시 맡겨두고 다음 날 가서 정산하던 적도 있었다. 요즈음은 이런 일은 없어진 것 같다. 아니면 더치페이를 하기도 하고.............

 

술 자리도 자주 있다보니, 건강도 생각해야 하고, 과음하는 경우에는 그 여파가 몇 일씩 가기 때문에 잦은 술자리가 부담스럽다. 어떨 때에는 하루에 3~4건의 술자리가 겹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한편으로는 잘 되었다 싶기도 하다.  어차피 금년이 지나기 전에 갖어야 할 술 자리인데 일정이 겹쳐서 참석을 하지 못 하기 때문에 술 자리를 피하게 된다.  술은 술술 잘 넘어가는 날이 문제이다. 첫 잔이 좀 씁쓸하고 맛이 당기지 않아야 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술술 잘 넘어가는 날이 있다. 물론 내 컨디션과 누구와 어디서 술을 마시느냐에 따라서 술 맛과 멋이 달라질 수도 있다.

 

과거 학교를 마치고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쯤만 해도 술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해서 늘 밤새 술 마시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술 취한 친구나 동료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맨 마지막에 터벅터벅 집으로 귀가하던 적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술을 마시고 잠시 눈만 붙이고 나면 몸이 가벼울 정도로 건강이 좋았던 것이 술을 많이 마시게 한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한지 20년이 넘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나이와 건강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미련한 것 같다. 내가 몸으로 직접 느끼지 못 하면, 말로 하고, 글로 가르쳐줘도 실감을 못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술을 과하게 권하지도 않는다. 주량에 따라서 적당하게 따르고 함께 즐기기 위해서 술을 마시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술 마시는 것 자체가 술 자리의 목적이 된 듯 하였다. 사실은 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오늘은 내가 사는 광명에서 대학동기생들 몇 몇이 모여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에 헤어졌다. 진주, 대구, 대전, 수원 등지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인데, 일 년에 한 두번씩 모여서 식사를 하면서 우의를 다지는 모임이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나이, 건강, 가족안부, 아이들 진로문제, 직장생활과 직업에 관한 것들이었다. 낮 술을 한 잔 하기도 했지만 나이에 걸맞게 각자 주량에 따라 권하면서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과거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지금 살아가고 있는 주변 이야기들로 오랫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나는어제 부서 송년모임에서 마신 술로 오늘은 쉬고 싶은 하루였다.  

 

2006.12.16  원경합장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년법회와 크리스마스 선물  (0) 2006.12.25
사람이 살아가는 길  (0) 2006.12.17
세태의 변화  (0) 2006.12.10
주말의 여유  (0) 2006.12.09
시공의 변화 1  (0) 2006.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