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마치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봄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것 같은 느낌이다. 비가 조금 내려서 습기를 가득 품은 그리고 포근한 기운의 아침 바람이 나의 피부를 스치는 바람에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은 마치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과 횟갈린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늘 횟갈림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유식에 의하면 마음은 의식세계와 무의식 세계가 있고, 의식세계는 겉마음(표층심리)으로써 밖으로 들어낼 수 있는 영역과 밖으로 들어낼 수 없는 비밀스러운 영역으로 나뉘어 진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낀 생각을 모두 아무에게나 털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로 인해서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킬 수도 있기에 그냥 참고 있다. 그러다가 어떤 기회가 닿으면 한 꺼번에 내 뱉는 수도 있고, 혹은 성직자를 통해서 고해성사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러지 않으면 믿을 만한 가까운 친구 앞에서 알코올 기운을 빌려서 토로하는 수가 있다. 신앙을 가진 신자라면 종교적인 절대자 앞에서 혼자서 회개하면서 독백을 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의식세계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서 95%는 무의식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무의식의 세계는 제7식 말라식과 제8식 아뢰야식으로 나누어서 그 깊이를 두 단계로 나눈다. 우리가 수행을 하면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면 제8식 아뢰야식까지는 가야 한다. 아뢰야식은 [쌓는다]는 의미를 가진 저장.창고의 의미라고 한다.
안이비설신 오감을 통한 감각의 세계인 욕계에서 허우적 거리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즉, 다섯 가지의 쾌락을 즐기면서,탐하면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불태우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는 것이 결국은 오욕을 탐하면서 자신을 불태우면서 살아가며, 그것이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육신의 죽음을 피할 수는 없고, 오욕을 탐하는 것도 어쩔 수는 없는 중생심이지만 불자라면 수행을 통해서 마땅히 깨달음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무엇을 깨닫게 되는지, 깨달아서는 뭘 하려고 하는지? 그 궁극적인 목적을 모르고 수행한답시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깨달음을 얻게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런 목적과 효과를 먼저 좀 생각을 해보고, 그 목적지를 향해서 출발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대승불교의 핵심교리는 중관학과 유식학에 있다고 한다. 그 중 유식학의 대표적인 경전이 해심밀경이라고 한다. 이 경전을 보면 좀 더 유식학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으려나? 대승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모든 것을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근본불교 시대 부처님의 말씀을 시대상황에 따라 그 당시 불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다시 다른 말로 설명하는 것들이 경전 속에는 많다고 한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로써 근본불교 시대의 [팔정도]가 대승불교시대로 넘어오면서 [육바라밀]로 소개된다.
20061109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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