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한글경전을 읽을 수 있는 까닭은?(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원철스님 )

圓鏡 2006. 8. 27. 17:43

어제 밤부터 장대같은 소나기가 가끔 내리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이신 원철스님께서 금강정사를 오셔서 재미있게 일요법회 법문을 해주셨다.

 

1. 경전의 속어(현지어)주의

    부처님께서는 현지어(각 나라 말)로써 부처님의 가르침(경전)을 설하라고 인정하셨다. 

 

2. 인도와 중국의 (언어)매개자인 서역인들

    초기에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 지리적으로 중간에 위치한 서역 사람들이 번역을 맡았다.

    그들은 바로 가축마등, 안세고, 축불삭, 지루가창, 지요안현, 강맹상, 구나발타라,

    구마라집 등이다.

 

3. 중국승려의 인도유학 ( 구법승 )

    - 법현 ; 불국기

    - 현장 ; 대당서역기 -- 오늘날 "서유기"라는 소설의 바탕이 되었음.

    - 의정 ; 남해기귀전

    - 혜초 ; 왕오천축국전 ( 신라의 고승 )

      당시 구법승들이 타클라마칸 사막, 천산과 히말라야산맥을 넘어서 인도로 法을

      구하러 떠났다. 그들 중 10%정도만 살아서 돌아왔다고 하니, 당시 求法행위는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 서역인들의 번역에 대한 불만족스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족 스님들이

      직접 인도로 유학을 떠났다. 

 

4. 한역대장경 / 현장 스님의 오종불번

    번역을 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는 번역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 다라니(주문)는 번역하지 않는다. 음사한다. - 신묘장구대다라니

    - 여러가지 뜻을 가진 말은 번역하지 않는다. - 아뇩다라삼먁삼보리 

    - 중국에 없는 말은 번역하지 않는다. - 보타산, 수미산 등

    - 음사한 선례가 있는 말은 번역하지 않는다. - 반야

    - 번역함으로써 뜻이 가벼워 지는 말은 번역하지 않는다. - 반야심경의 마지막 주문

    * 오늘날 한글로 다라니를 음사한 부분에 대해서는 원경 개인적인 질문이 있다.

       즉,  범어를 우리 말로 직접 다시 번역을 해야 하지 않느냐 ?

 

5. 고려대장경

    고려말기에 구국차원에서 대작불사를 16년간에 걸쳐서 하였다.( 4년은 준비, 12년간 새김 )

    81,340여장으로써 총 오천이백만자 정도이다. 600여명의 각수들이 12년간 새겼는데 글자체가

    동일하다.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과거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 하여 사경을 통해서 경전을 만들어 불법을 전했다.

    결국 사경은 포교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불경책을 만드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6. 조선의 간경도감

    조선 세종시대 1443년 한글이 창제되고, 세조시대인 1461년에 집현전 학사들에 의해서

    한글로 번역작업을 하였다. 당시 "숭유억불"정책을 표방하던 조선에서 불교 경전을 번역

    했다는 것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7. 동국역경원에서 한글대장경 간행완료

    작년( 2005년 )에 한글로 번역작업이 완료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경전들은 목숨을 걸고 인도로 떠난 구법승들에 의해서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로 전래되었고, 전래된 경전들은 당시 어려운 여건 아래서 범어가 중국어로, 중국어가

다시 우리말로 번역되어 오늘날에 이르른 것이다.

 

원철스님께서는 이렇게 어렵게 求한 경전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셨다. 우리나라 어떤 스님께서는

평소에 법화경을 수지하시면서, 여행을 할 때에는 항상 버스표를 두 장 사서, 한 장은 스님이,

나머지 한 장은 그 법화경 경전이 앉아가는 자리로 쓰였다고 한다. 

 

* 대장경이란?     온갖 불전들을 망라한 총서를 이른다.

 

20060827 원경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