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를 다시 접하면서..........
오늘 다시 오리서원에서 주관하는 사기열전( 태동고전연구소 김만일 소장 ) 9강이 시작되었다. 지난 해 가을에 9강으로 종료되었던 [사마천의 사기] 강의가 인기리에 올 봄에 다시 개강된 것이다. 이 강의를 듣겠다고 신청.접수한 광명시민이 80명이나 되며, 지하 대강당의 자리를 가득 채웠다. 다시 들어도 재미있었다. 강사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으로.........
사마천이 아버지의 유언( 사가가 되어서 역사서를 남겨달라 )을 지키기 위해서 한무제로부터 사형을 받고도,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궁형을 선택하여 살아 남았다. 그 울분이 사기의 서문(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태사령자서]에 기록(사마천 본인이 쓴 일대기)으로 남아있다. 사마천이 36세에 태사공(역사편찬위원장?)이었던 부친이 사망하자, 사마천이 태사령(역사편찬 직함) 관직을 받고, 42세부터 史記 저술에 착수하였다. 그 후 47세에 흉노족에게 포로로 잡혀있던 "이릉" 장군을 변호하는 발언이 화근이 되어, 한무제의 노여움으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56세 사망한 원인에 대해서 자연사했다는 설과 한무제로부터 죽임을 당했다는 설이 있다. 동양의 모든 역사서는 후대의 왕조에서 전대의 왕조 역사서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사마천은 한무제보다 늦게 태어나고 3년 먼저 사망하면서도, 살아 있는 권력자 한무제와 그의 부친에 대한 기록( 좋지 않은 내용까지 )을 史記에 남겼다. why?
오늘날의 정치상황과 2천년 전의 정치상황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절대권력자 군주( 조선시대 광해군 사례 )에 대해서 나쁜(좋지 않은) 기록을 남기면 사관(관련자들)이 죽음을 면치 못하므로, 권력자에 대한 평가는 그 권력자가 죽은 후에 史家들에 의해서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인간의 욕심에 의한 권력다툼과 이권다툼은 고대와 현대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사교과서 문제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몇 일 전에 쿠알라룸프르에서 일어난 이복형 김정남 암살사건도 고대의 역사와 다름이 없다. 고대 역사에서도 권력때문에 부자간에 또는 형제간에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사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지난 20년 정치사는 이런 이유에서 아직 제대로 정리를 할 수가 없다. 5.18사건, 대북송금사건, 광우병시위, 세월호사건관련 시위 등에 관한 역사는, 그 주인공들과 관련자들이 모두 이 세상을 하직하고 난 후에, 사실에 근거해서 역사가들에 의해서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 질 것이다. 이러한 추측이 가능한 것은,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합병 후, 1945년 해방 이전까지 그 당시 권력자들이 한 행동에 따라, 오늘날 친일파 명단이 작성.공개된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친일파 후손들은 조상들로 인해서 오늘날 얼마나 부끄럽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이익에 反하는 말과 행동은 자제하고, 국민이 편안하게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국민의 뜻에 반하는( 국민을 어리석은 무리로 보고 ) 개인의 욕심은, 결국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하반야바라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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