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당시의 고행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지는 비상비비상처였다. 붓다는 이 경지에 만족하지 않고, 고행주의를 포기하고 중도수행으로 방법을 달리하였다. 중도수행이란 편의상 남방불교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북방불교에서 참선수행이라고 해두자.
불법을 대하면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는 관념화된 불교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의 실체를 대할수록 한국불교의 진리의 관념화는 기복불교보다 더 심각한 병폐라고 절감한다.
탐진치를 벗어나면 깨달음이라 하는데, 실상은 이 때부터가 법계를 아우르는 수행의 시작일 뿐이다.
현재 우리는 불교의 이타심을 당연시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이러한 사고가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큰 도약이었다. 붓다의 '이타심'이라는 한 생각으로 비로소 인류에게는 명실상부한 정신적 문명이 시작되었다.
몸과 마음이 하나를 이루고, 다시 그 마음이 우주와 계합할 때, 드디어 붓다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5비구를 찾아가서 초전법륜을 한 것은 사성제였다.( 12연기는 그 후대에 정리된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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