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관포지교 고사성어를 되새겨 보다

圓鏡 2012. 7. 10. 19:00

춘추시대 제나라 관중과 포숙은 서로 친구간으로 각자 달리 모시던 왕자가 두 분 있었다. 어느날 갑작스런 정변으로 제나라 임금자리가 공석이 되자, 서로 자기가 모시던 주군을 임금으로 모시기 위해 경쟁하는 관계 속에서, 관중이 포숙의 주군인 소백을 활로 쏴 죽인다. 관중의 활살을 혁대에 맞은 소백은 죽은 척 하면서 그 위기를 모면한 후, 먼저 제나라 수도에 도착해 임금자리에 올랐다. 그 후에 관중이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포숙이 관중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임금에게 간청해서 관중을 인재로 발탁하게 된다. 후일 관중이 재상이 되고, 그 임금( 제나라 환공 )을 도와 환공은 맨 먼저 춘추오패 중의 하나로 등장하게 된다. 포숙이 환공을 설득하는 과정에 이런 말이 있다. '제나라만 통치하려면 저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천하를 다스리려면 관중이 필요합니다.' 또한 관중은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 게다가 포숙은 관중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뒤로 물러나게 된다는 고사를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요즈음처럼 무한경쟁사회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고 이렇게 인재를 추천하고 자신은 뒤로 물러날 수 있을까? 이런 인간미, 미덕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경쟁은 심화될수록 끝이 없고, 마지막에는 자멸 내지 공멸하는 수도 있다. 물론 선의의 경쟁은 서로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자멸과 공멸을 초래한다. 그러한 사례가 경쟁사회에서 다반사로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법정소송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변호사들이 더욱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것 같다.

경쟁은 선의의 경쟁, 적당한 선에서 멈출 수 있는 경쟁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지나친 경쟁은 최저가입찰 방식에서도 볼 수 있다. 시장진입을 하기 위해서 1원에 낙찰을 하고 사업을 수주하는 사례 등이 자멸과 공멸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 무한경쟁, 무한서비스, 무한돌봄이 등등 무한이라는 말의 쓰임새도 잦아 졌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과연 행복해졌는가? 더욱더 피곤해졌는가? 불행해졌는가? 행.불행에 물질적인 요소가 충분조건은 되지 못 한다. 원경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