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례행사로 정초 7일간의 기도가 끝나고 나면, 적멸보궁으로 성지순례를 떠난다. 일주일 중에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걸리면 해마다 나도 동참을 했었다. 몇 년 전에 양산 영축산 통도사를 그리고 오늘 다녀왔던 영월 사자산 법흥사였다. 신묘년 새해에도 가장 부담없는 토요일로 행사일정이 잡혀서 신도들과 함께 스님을 모시고 다녀왔다.
주말 이틀 중에 이 행사가 잡힐 확률은 2/7이다. 약 30%의 가능성이 있는 행사여서 나에게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일부러 하루 휴가 내면서까지 동참하긴 부담스런 행사여서, 주말에 행사 일정이 잡히면 꼭 참석하곤 했었다. 오늘은 고향에서 부모님께서 우리 집에 와 계시는 가운데 약간의 눈치까지 봐가면서 다녀왔다. 왜냐하면 5대 적멸보궁 가운데 아직 못 가본 곳이 두 곳(정암사)인데 그 중에 하나가 상원사 적멸보궁이기에 꼭 가고 싶었다. 이것도 내 욕심이런가 ?
연전에 불교대학 도반들과 함께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을 다녀오면서 수차 들었던 말이, 봉정암은 인연이 닿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절이라는 것이었다. 함께 동행하던 도반들이 이구동성으로 오늘 봉정암 순례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인연이 닿아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오늘 그 말이 떠올랐다. 사실 우리 일상생활 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인연이 닿아서 일어나는 것이지 우연은 없다. 이것이 불교의 교리이다. 인과 연이 마주쳐서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인이 있지만 연이 닿지 않거나 연은 준비되어 있는데 인이 없다면 인연이 성립되지 않아서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
강원도 산행이 걱정되어, 어제 아침에 월정사 종무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산행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밤 사이에 갑작스럽게 강원도 평창.진부 일원에 폭설이 내려서 도로, 산의 출입이 통제되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성지순례를 떠나는 순간에 바뀐 것이어서 행사일정에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일단 상원사에서 가까운 사자산 법흥사로 정해두고 그 나머지 일정을 정하지도 못한 가운데 출발을 하였다. 중간 휴게소에서 정리한 행선지를 공지를 하고, 다시 법흥사에서 일정을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강원도의 눈은 다른 지역보다 많이 내리기도 하지만, 한 번 쌓인 눈이 봄까지 잘 녹지 않는 것도 다른 지역과는 다른 점이다. 그래서 상원사까지만 가게 되면 아이젠을 이용해서라도 중대의 적멸보궁을 가보겠다고 어제 밤까지 다짐을 했건만 행선지는 상원사가 아니라 법흥사로 이미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법흥사는 세 번째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다.
그나마 생각지도 않았던 치악산 구룡사(龜龍寺)를 참배하게 되었다. 특히 이 절은 관음도량 성지 33사 중에서 30호로 지정되어 있었고, 마침 안내하시는 거사님 한 분의 안내로 이 절에 얽힌 전설과 역사를 함께 듣고 짧은 시간에 의미있는 참배를 마치고 귀가하였다.
한편 법흥사 적멸보궁은 사시예불 중인 법당 공간이 너무 좁아서 우리 절 신도들이 참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당에 임시로 설치한 천막에 냉기를 온기로 바꿔줄 전기난로를 작동시키고 온기가 형성된 후에 좁은 천막에 빽빽히 들어서서 먼저 천수경, 예불, 참회진언, 석가모니불 정근, 반야심경으로 예배를 마치고, 사시예불이 끝난 법당에 우리 절 신도들로 다시 자리를 메운 가운데 주지스님의 축원이 이어졌다. 축원 후에 하산하여 점심공양을 마치고 요선정으로 향했다.
적멸보궁 정면이 바라보이는 천막의 앞면은 투명한 비닐로 되어 있어서 맨 앞줄에 서 있던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입김을 바라보면서 염불을 하였고, 날씨가 흐린 가운데 눈발이 흩날린다. 몇 몇 불자들은 마당에 방석만 깔고 두 손을 모으고 법당에서 진행되는 사시예불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광경이었다. 적멸보궁에서 참배를 마치고 하산하는 길에는 신도들보다 먼저 앞서 내려와 제2보궁이라고 명명된 약사전에 들러서 요즈음 건강이 좋지 않은 큰 아들을 위해 잠시 간절한 맘으로 기도를 올리고서 바쁜 걸음으로 하산하였다.
강원도 도로 곳곳에 구제역 방제를 위한 소독설비가 도로좌우에 설치되어 차량이 지나가기만 하면 좌우측에서 통행차량을 소독하도록 해놓아서 작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도들이 늘어서 차량이 3대가 되었지만, 대부분이 만다라법회와 수다라법회의 신입불자들이었다. 왜냐하면 낯설은 신도들이 많아서이다. 세월이 바뀌면 모든 게 다 바뀐다. 이것이 바로 공의 원리이다. 한국 선불교의 핵심교리이다. 가끔 이런 변화를 거부하는 가운데 마찰이 발생하기도 한다.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내가 그 변화의 물결에 편승해서 나도 바뀌어야 하는데 세월 따라 바뀌는 현상을 내 기준으로 탓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자연의 현상이고, 우리 일상의 삶이다. 그래서 30년을 간격으로 한 세대라고 칭하면서 세대차이를 운운하고 있다. 나도 나이 탓인지 자라온 환경변화의 탓인지, 아들 세대와는 세대차이를 느낀다. 내 부모님이 나의 세대와 세대차이를 느꼈듯이...........
정초 7일기도 후, 적멸보궁 성지순례( 법흥사, 요선정 마애불, 구룡사 )를 마치고, ===== 원경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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