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가을걷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많은 비를 뿌리고 하루가 지나간다. 어제부터 예보가 되긴 하였지만, 가을 비가 여름철 소나기처럼 세차게 이렇게 많이 내릴 줄은 몰랐다.
예보를 통해서 오늘 흐린 날씨인 줄을 알면서도 오전에 구름산을 올랐다. 가리대광장을 지날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바로 빗줄기가 굵어졌다. 그러나 모처럼 나선 산행인지라 멈추지 않고 줄곳 약수터를 향해 걸었다. 숨 가쁜 동행자를 위해서 중간중간 벤치에 앉아 좀 쉬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벤치가 없다. 모두 비에 젖어서......... 중간 중간 서서 잠시 잠시 쉬어가면서 약수터를 향했다. 약수터를 지날 즈음에는 모두 하산한 뒤라 인적이 드물어서 좋았다.
구름산 주변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두 세 달 전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여파로 이제 구름산을 오를인구도 많이 늘어나게 된다. 마치 봄 가을로 날씨 좋은 날, 관악산 오르는 분위기가 그대로 이 구름산에도연출될 것 같아 걱정된다. 주변 도로는 예전보다 두 배 이상 확장되었건만, 늘어난 인구에 비하면 예전보다 더 복잡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집 앞 들판이 깜깜하던 지난 날 보다는 환하게 불빛이 보이는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아무튼 새로운 이웃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빗방울 소리 ....... 이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린가! 도시 잡음이 깔린 가운데 들리는 여름철 소나기와는 다르다. 고요한 산중에서 만난 가을 비, 이미 낙엽이 된 갈참나무 잎으로 온 산이 뒤 겹겹이 덮인 뒤에 내린 비여 마른 나뭇잎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웅장한 자연의 소리로 들려온다. 잠시 서서 재킷에 붙은 모자를 좀 더 열어 젖히고 자연의 소리를 한 번 크게 들어본다.
굵은 빗방울은 사정없이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을 때리고, 또는 이미 마른 잎이 된 낙엽을 때린다. 이 두 소리는 다르다. 같은 나뭇잎이라도 하나는 아직 물기가 있는 살아 있는 잎이고 하나는 물기가 없이 마른 나뭇잎이다. 하나는 아직 허공에 매달려 있고, 하나는 땅 위에 쌓여 있기에 빗방울이 내리치게 되면 이 두 경우의 소리가 다르다.
갑작스럽게 우두둑 갈참나무 잎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소나기를 산중에서 만나고 보니, 문득 어릴 적 두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하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소먹이러 산으로 나갔다가 산중에서 갑작스럽게 소나기를 만나 비를 피하기 위해서 오동나무잎이나 망게 잎으로 모자를 만들어 써보지만 결국은 온 몸이 소나기에 흠뻑 젖을 수 밖에 없었던 일, 다른 하나는 십리 길을 걸어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 등하교 시에 소나기를 만나면 천으로 된 책보자기 속에 든 책이 젖을까봐 옷을 벗어서 책보자기를 다시 한 번 더 싸고 양팔로 껴안고 턱 밑에 끼고 무작정 뛰던 일이 떠오른다. 그 때 마침 주변에 원두막이라도 있으면, 그 원두막 밑으로 피할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오늘은 비가 오는 줄 알면서, 그리고 모처럼 가을비와 낙엽이 연출하는 하모니를 들으면서 둘이서 산길을 걸었다. 위와 같이 과거 어린시절 갑작스럽게 소나기를 맞이할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으로 오늘 소나기를 산중에서 맞이하여 그 동안 세월의 간격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시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 기온이 떨어져 찬 바람이 불어오겠지....... 오늘은 비온 후에도 저녁 공기가 선선해서 좋았다. 11월 한 달이 지금처럼 바쁘게 지나고 나면,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십이월이 다가오고, 본격적으로 겨울철로 접어들게 된다. 이렇게 시간은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흘러간다. 그 시간 따라 나도 너도 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시시각각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 눈으로 인지를 하고 못 하고를 떠나 이 우주의 만물은 잠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시간에 따라 순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가고 있다.
이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될 일을, 아쉬워서 변화를 거부하게 되면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 우주의 넓디 넓은 공간에 비하면, 티끌만한 행성인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자연을 그스러고 말고 할 것이 없다. 현대 과학문명이 과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한 결과, 우리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곤 있지만 아직도 미스테리는 무지하게 많다. 성주괴공, 생주이멸 하는 이 삼라만상 중의 하나인 나 자신도 자연의 순리따라 왔다가 가는 진리를 알고 자연스럽게 갈 일이다.
시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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