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겨울 어느 날, 스님의 법문을 듣고 싶어, 지금 다니는 금강정사로 발길이 닿았다.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찬 법당은 낯 설었고, 복잡한 의식절차는 나를 불편하게 해서, 법문을 듣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무척 무겁게 하였다.
그러던 차에 그 해 봄에 있었던 불교기본교육을 재적사찰에서 받았고, 좀 더 공부하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봉은사에서 불교대학과정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 교육을 통해서 포교사 제도를 알게 되었고, 기왕이면 공부한 실력이라도 한 번 평가해보자고 치른 포교사 시험을 통과하고 보니, 나에게는 새로운 신행활동의 장이 열렸다.
포교사라는 신분증이 주어지면서 포교사단의 구성원으로서 새터민들을 만나게 되었고, 금년 초부터 봉은사에서 새 신도들을 대상으로 입문교육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또한 광명에 있는 재적사찰에서는 지난 7월부터 신행상담팀을 꾸려서 신입불자들을 대상으로 사찰안내를 하고, 신행상담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포교사라는 신분증이 나에게 이런 인연을 만들어 주었다.
작년에 예비포교사로서 연수기간 중에 인연이 닿은 새터민 교육장에서 포교활동을 한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아직도 지난 해 4월 첫 일요법회에 참석했던 그 기분을 유지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새터민들과 일요법회를 가지고 있다. 내가 만나는 새터민들은 교육기간 8주 동안에 딱 두 번 만나게 된다. 두 번 만난 후에는 모두가 전국으로 헤어진다.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이들이 불교를 이해하고, 삶의 터전으로 정해진 곳에서 가까운 사찰을 찾아가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북한에서 나오면서 생사를 넘나들며, 수년 동안 해외에서 고생을 하다가 찾아온 대한민국, 아직 안정적인 생활의 터전이 마련되지 못 한 분들이다. 8주간 정착교육을 마치면 어디론가 거처는 배정이 되겠지만, 어떤 직업을 구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가 미정인 상태이므로, 대부분의 새터민들에게 밝은 표정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들에게 종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장된 바가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라 앉히고, 앞으로의 삶을 차분하게 설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데 종교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종교가 의지처가 되어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반석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새터민들과 법회를 보면서 종종 듣는 말들은 이러하다. “불교 용어를 쓰지 말고, 불교를 쉽게 좀 설명해주세요.” “몰라서 질문을 못 하겠습니다” “포교사님들 자주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매주 바뀌는 포교사님들이 낯설어서 질문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타 종교에서는 정해진 목사나 신부가 종교의식을 가지는 것에 비해서 불교는 봉사자로서 포교사들이 법회를 주관하기에 매 주마다 사람이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법회을 진행하면서 예불, 반야심경, 천수경, 찬불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박자를 맞춰 가면서 진행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새터민 법회 시에 목탁집전은 무척 힘들다. 법회에 참석한 새터민 모두가 불교에 관한한 초보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법회에 동참한 새터민들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큰 소리로 예불을 올리고, 천수경을 함께 봉독하고, 찬불가를 힘차게 나름대로 불러 본다. 법회에 동참하는 새터민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그들이 뭔가를 갈망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큰 소리로 뭔가를 한 번 외쳐보고 싶은 듯한 목소리들이다.
새터민 대표자가 직접 낭독하는 발원문을 들을 때는 포교사나 새터민이나 모두가 함께 숙연해진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바를 담은 발원문은 새터민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기에 충분하다. 지난 10월 초, 안성 칠장사에서 있었던 새터민을 위한 천도재는 동참한 새터민들이 간절한 맘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포교원장스님께서 짧은 시간에 천도재의 의미를 쉽게 소개해주셨고, 이어서 천도재를 지내는 시간동안은 모두가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불확실한 미래, 북이나 해외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이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이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남한에서 정착하는 기간 동안만이라도 종교가 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대부분은 타 종교의 도움으로 한국행을 하게 되었지만, 다양한 종교가 있는 이 곳에서 본인들이 원하는 종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포교사의 역할이다. 8번의 제한된 만남을 통해서 불교를 제대로 이해시키고 본인이 불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포교사의 역할이다.
새터민들과 함께 하는 일요법회를 통해서 내 스스로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하고 있다. 새터민들과의 인연으로 불교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한 달에 한 번씩은 반복해서 정리하고 점검하고 전달한다. 이들의 어려움을 부분적으로 들어보고, 잠시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 나 자신을 한 번 되돌아 보는 동기를 부여받게 된다. 나는 그들을 불문으로 안내하고, 그들은 나에게 나의 신행활동을 다시 한 번 더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렇게 현장에서 새터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나에게 수행의 장이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새터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교육이 끝나면, 어느 지역으로 거처가 배정될 것인지, 그리고 거기서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인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차원에서도 여러 방면으로 교육과 직업을 알선하고 있지만, 불교라는 종교단체에서도 개인차원보다는 시스템적으로 이런 부분을 지원할 수 있는 상설조직을 갖추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고 이들을 위한 일요법회는 8주간의 새터민 전용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좀 더 짜임새 있는 설법을 할 필요가 있다. 제한된 시간에 불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고 내년에는 시행이 되었으면 한다. 물질적인 측면도 조직차원에서 지원이 되어서 그들과 좀 더 풍족한 만남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맘을 가져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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