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어두운 밤 길에 마주친 새끼줄을 보고 뱀으로 오인하는 수가 있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인식파의 차이에 따라 사물이 달라 보인다고 생각한다. 사물은 누가 봐도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는 절대불변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보는 사람에 따라 사물은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공이라고 한다. 공인 사물에게 우리들 각자가 인식파를 보내고, 그 인식파가 되돌아 오는 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공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반야심경에서는 모든 사물이 공하다고 한다. 반야심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물은 공하기 때문에 우리가 발사하는 인식파를 바꾸면 사물은 달라 보인다. 공포에 질린 마음으로 인식파를 보내면 뱀으로 보이지만, 평상심으로 인식파를 보내면 뱀은 사라진다.
공이란? [차별(분별심?)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설사 누군가가 차별을 하게 되더라도 [그 차별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쓰레기는 더럽다고 한다. 그것은 쓰레기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더러운 것일 뿐, 그런 고정관념을 없앤다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차를 우려 마시고, 남은 찌꺼기를 생각해보자. 다완에 담긴 찻잎은 조금도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그것이 설거지대에 버려지는 순간 더러워지게 된다. 장소가 달라지고 쓰레기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만으로 한 순간에 더러워지고 만다. 그런데 차 찌꺼기 자체는 변함이 없으니, 결국 달라진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이 더럽힌 사물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은 깨끗하다 저것은 더럽다] 라고 차별(분별)하기 시작하면, 인간에 대해서도 [이것은 좋은 점이다. 이것은 나쁜 점이다] 라고 하면서 집착하게 된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이런 점은 결점이야]와 같은 생각을 자꾸 하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다. 반야심경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지 말라고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예를들면, 세수대야 3개를 준비해서 각각 20도, 30도, 40도 물을 담아 놓고, 20도와 40도의 세수대야에 각각 왼손과 오른손을 5분정도 담근다. 5분 후에 두 손을 동시에 30도의 물에 담그면, 양손의 느낌은 어떨까? 왼손은 따뜻해졌다고, 오른손은 차가워졌다고 느낄 것이다. 한 사람이 동일한 물에 대해서도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반야심경이 말하는 공이다. 이 때 30도의 물이 바로 공이다. 이렇게 공인 것으로 두고서 우리는 맘대로 따뜻하다, 식었다 라고 인식하면서 그것에 얽매이고 있다. 그런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 반야심경의 가르침인 것이다.
20071203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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