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여행)

봉정암 순례기( 사진이 들어있는 )

圓鏡 2007. 4. 29. 21:14

지난 해 가을부터 부쩍 가보고 싶었던 곳, 불자들간에 성지순례 이야기를 하다보면 봉정암이 빠질 수가 없고, 이 곳에 다녀온 경험을 들려주는 불자의 무용담은 대단하다. 그런 무용담을 경청하고 있다가 가끔씩 조심스럽게 질문이나 해오던 곳이 바로 봉정암 이었다. 내 주변의 만사를 제쳐 두고 불교대학 도반들이 가는 봉정암 순례행사에 동참하기로 미리 결정하였다. 그 전에 맘에 갈등이 있었지만 동참하기로 결정을 하고나니 맘도 평온하였으며 떠날 날만 기다려졌다.

 

토요일 새벽 4시에 기상해서 떠날 채비를 갖추고 집을 나섰다. 봉은사에 일찍 도착하여 5시반경에 대웅전을 참배하러 갔더니 놀랍게도 신도들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빽빽하게 대웅전을 메우고 있었다. 그 틈에 끼어서 삼배만 올리고 다시 내 차로 되돌아와서 차내 법회진행 준비연습을 좀 하고 바로 버스에 올랐다. 벌써 날은 밝았고, 먼저 도착한 도반들은 승차하고 있었다. 집행부에서는 부산하게 준비한 물, 떡, 과일, 기념타올 등을 동참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집에서부터 가득찬 배낭은 더 들어갈 곳이 없고, 배부른 배낭은 버스 선반에 올라 가지도 않았다.

 

6시 20분경 간식 배분과 인원파악을 마치고 버스 두 대는 마침내 설악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88올림픽대로를 타고 중부고속도로 하남IC를 빠져나와 팔당대교를 넘어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으로 향했다. 양평에서는 44번 국도를 타고 강원도 인제군 한계리까지 가서 한계리 입구에서 다시 46번 국도로 바꿔타고서는 용대리에서 버스는 멈추었다.  

 

이미 도착한 조계사 차량이 여러 대이고 부산서 온 차량이 두 대 등이었다.  하차한 도반들은 간단한 산행준비를 마치고 다시 버스편으로 백담사까지 이동하기 위해서 버스정류장에서 수 십여 미터의 긴 줄을 서야만 했다. 꼬불꼬불하게 난 산길을 따라 버스는 바쁘게 달려서 우리를 백담사 앞 마당에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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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이는 맘으로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주차장에 9시경 도착하여 산행준비를 하느라 부산한 모습.  여기서 전용 버스편으로 6킬로 정도 산행을 하면 백담사가 나온다. 백담사에서 남 먼저 수심교를 넘으려는 순간 성림 거사님이 큰 소리로 "모두 바로 올라갑시다. 내려올 때 들리세요" 하는 바람에 백담사 참배를 포기하고 머쓱하게 발걸음을 설악산 봉정암으로 돌렸다. 한 시간 정도 올라가니 자그마한 영시암 암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켠에 있는 임시 막사에서 점심공양을 맛있게 하고,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하였다. 여기서부터 준비해갔던 지팡이가 필요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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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아지른듯한 절벽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고, 수 십억년의 세월동안 만든 계곡 사이로 차디찬 개울 물이 흐르고 있었다. 폭포수 아래 연못은 바닥이 눈으로 보여서 깊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주 깊은 연못은 맑은 곳과 연녹색, 짙은 녹색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병풍처럼 깍아지른 암벽은 나를 외소하게 하고 나를 겸손하게 하기에 충분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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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고목들이 여기저기 쉽게 눈에 뜨인다. 그리고 보통 해발 1천미터가 넘게 되면 큰 나무는 사라지고 관목들이 즐비하게 마련인데 설악산은 예외인듯, 비교적 큰 나무가 고산에까지 분포하고, 바위 틈 사이로 서 있는 큰 소나무는 강한 비바람을 어떻게 이기면서 붙어서 있는지 궁금하였다. 맨 아래 사진은 바위 위에 저렇게 큰 나무가 자랄 수 있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지금은 고목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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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의 비경 중의 하나가 바로 바위를 타고 내리는 다단계 폭포,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물이 바위를 깍아낸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물이 바위를 가른다?  이번 성지순례 중에 몇 가지 이해가 안가는 것들이 있었는데 바로 물이다. 해발 1천미터가 넘는 위치에, 그리고 그 위로는 300~400미터의 소청봉이 있긴 하지만 온통 바위뿐인 곳, 깔닥고개 입구에서도 그렇게 많은 수량이 흘러내리고, 봉정암 뜰 앞에는 약수가 풍부하게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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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군 북면 용대리 입구에는 지난 해 수해로 도로가 반은 유실되고, 반쪽으로 통행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새로운 교각을 하천바닥에 굳게 그리고 높게 세우고 있었다. 봉정암이 해발 1200미터가 넘고 산길로 11킬로미터 정도인데 봉정암을 불과 1.5Km를 남겨둔 곳에서 조차 사진과 같이 교량이 급류에 휩쓸려 뿌리채 뽑혀 나간 나무들과 함께 뒤엉켜 더러 누워있다. 아마도 수량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급류에 흘러내린 큰 바위돌이 약한 교각을 치고 교량을 무너뜨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아마도 금년 가을 단풍시절에는 전 구간의 산책로가 아주 안전하게 그리고 걷기에 편리하도록 되어 있을 것 같았다. 수해복구 공사가 여러 구간에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고, 공사용 자재를 운반하는 헬리콥터의 굉음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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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050미터 위치부터 깔닥고개는 시작된다. 바로 눈 앞에는 설산이 보인다. 처음에는 눈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 했다. 내일이면 5월인데 왠 눈?  소청봉에는 흙이 다른가 보다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제서야 이번 행사 준비물 리스트 중에 있던 아이젠이 떠올랐다. 깔닥고개는 온통 바위돌로 가득차 있는데 군데군데 인공사다리와 계단이 놓여져 있다. 경사가 급해서 위에서 내려다 보면 사진과 같지만 뒤에서 올려다보면 앞 사람의 특정 부위만 보인다.  숨이 차서 넘어가기 직전에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바로 오색 연등이다. 직감적으로 이제는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봉정암이 눈 앞에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설레임을 걷잡을 수 없다. 발걸음은 바빠지고 숨은 더욱 가빠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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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나뭇가지 사이로 [봉정암]이라는 새로 지은듯한 종무소와 여신도 방사가 크게 보인다. 그리고 여기저기 큰 바위가 보이고, 봉정암 좁은 마당에 들어서면 주변에 크기가 비슷비슷한 암자들이 많아서 어느 것이 법당.대웅전인지 알 수가 없어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 된다. 여기서 만난 총무님으로부터 도량주변 안내를 잠시 받았다. 맨 아래 좌측에 보이는 법당으로 가장 먼저 올라가서 준비해간 오이와 쌀을 불단에 올려 놓고, 108배부터 했다. 부처님께 감사하는 맘으로..... 지금까지는 봉투로 보시금을 냈지만 이번 만은 특별히 공양물을 준비해 갔다. 먼저 다녀오신 분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에 무겁지만 공양물을 준비했다. 부처 바위 아래 작은 법당이 아름답게 서 있었다. 법당에는 물론 불상이 없다. 좌복만 있고, 그 뒤로는 작은 소나무가지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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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배정된 방사에 들러서 짐을 풀고, 가벼운 맘으로 사리탑으로 올라갔다. 부처님의 뇌사리가 봉안되어 있어서 영험이 있다는 곳, 우리나라 오대적멸 보궁중의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바로 그 불사리탑이 눈 앞에 보였다. 그런데 오기 전에 동영상으로 봤던 모습과는 달리 부목 세 개에 의지한 오층 석탑이 안스러워 보였다. 문수전보다 먼저 불사를 해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청봉 기상관측소 아래에는 잔설이 남아 있고, 발 아래로는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는 설악산의 장엄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여느 산에서 보아오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그 웅장한 모습이 나를 작게 만들고, 하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저녁공양을 하기 위해서 선 줄은 봉정암 밖으로 이어진다. 저녁공양을 간단하게 마치고, 바쁜 걸음으로 법당을 향했다. 겨우 자리를 하나 잡았다. 오늘 입산자가 900여명, 법당 자리는 300여개 자리잡을 확율은 3:1이다. 봉정암에서 특이한 것은 다른 사찰의 좌복보다 1/2이나 2/3정도 되어 보이는 파란색 좌복을 빈틈없이 앞뒤좌우로 붙여 놓는 것이다. 내가 그 좌복에 앉으면 나의 좌우 무릎이 좌복 바깥으로 나갈 정도의 사이즈이다. 그나마 나의 좌측에는 거사님들이 두 분 자리를 잡았지만 보살님들 틈에 사면초가이다. 자리는 좁지.... 그 작은 법당에 300여명의 신도들이 자리를 잡았다. 유일하게 문이 나 있는 법당 복도측에는 찬 바람을 막기 위해서 비닐로 막아 놓았다. 환기는 되지 않고, 신도들은 앞뒤좌우로 몸이 닿을 정도로 발디딜 틈이 없다. 숨이 막힌다. 복도에도 빈틈이 없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저녁예불과 법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니, 밤 바람이 추운 바깥에도 자리를 깔고 좌복으로 무릎을 덮고 추위를 피한 채 법문을 듣고 있었다. 금년 들어서 가장 많은 신도들이 이번에 왔다고 한다. 많은 경우에는 수 천명의 신도들이 올라와서 잠자리가 없어서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하루 밤을 지새운다고도 한다.

 

지난 밤에는 자정이 조금 지나 철야기도를 하는 법당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서 목탁소리가 들려오는 사리탑으로 올라갔다. 하현달의 밝은 달빛에 의지하여 사리탑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소청봉 봉우리에 별들이 내려 앉아 모여 있고, 내 머리 맏에도 닿을 듯한 별들이 총총한 밤에 저 멀리 발아래로 희미하게 수 많은 산봉우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고산 봉우리인지라 새벽 바람만은 매섭다. 스님의 가사 장삼은 찬 바람에 휘날리고, 맑게 들려오는 목탁소리에 의지한 신도들의 석가모니 정근 염불소리는 끊임이 없었다. 간 밤의 그 광경과 묘한 기분은 글로 다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자정이 넘은 고요한 새벽에, 밝은 달빛과 별빛 아래, 발 아래 수 많은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된 탑 앞에서 참선을 하다............이번 성지순례에서 나의 하이라이트는 이 부분일 것이다. 스님의 목탁소리가 멈추고 나는 좌선상태로 앉아 있었지만 찬 바람은 나를 그 자리에 더 이상 머무르지못 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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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불과 천도재를 마치자 마자 하산하기 전에 다시 백팔배를 했다. 그리고 나서 주변 정리를 하고, 짐부터 챙겼다. 벌써부터 길게 늘어 서 있는 아침공양 대기줄에 줄을 섰다. 새벽 5시 40분경 고요산 산골짝에 확성기를 통해서 아침공양을 안내하는 방송이 울려퍼졌다. 아침공양 후에 다시 사리탑으로 올라가서 백팔배와 좌선을 잠시 하다가 도반들보다는 늦게서야 하산을 하기 시작하였다.  한 동안 혼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산을 하였다. 중간쯤 다다랐을 때 장사진을 이룬 행렬을 만났다. 우리 도반들의 행렬이었다.   

 

백담사라고 하면 사찰의 이미지보다는 전임 모 대통령께서 칩거하던 곳으로 떠오른다. 만해 한용운 선생께서 이곳에 계시면서 문필활동을 하셨다는 것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당신은 흙 발로 나를 짓밟읍니다"  암울했던 일제치하의 민족 저항시인답게 그 울분을 시로써 이렇게 토로하셨다. 내가 고3시절, 이러한 시들을 암송하고 공부하던 때가 떠올랐다. 백담사 경내에는 "만해당"과 "만해기념관"이 따로 있을 정도로 백담사와 한용운 선생의 인연은 깊다.


 

20070430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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