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정해년 설 날

圓鏡 2007. 2. 20. 01:52

이젠 명절이 어릴 때처럼 그렇게 기다려지는 날은 아니다. 명절이기에 부모님을 뵈러, 조상님들께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출발하기 전부터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오늘은 몇 시간만에 고향에 도착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부터....... 과거 두 아들 어릴 때에는 온 가족이 뒷 좌석에서 잠자고, 운전기사 혼자서 고군분투하면서 뜬 눈으로 밤새 달려 고향에 도착하고 보니, 무릎도 아프고 온 몸에 피로감이 찾아든다. 사실 경제논리로만 따진다면 고향에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그 당시에도 문득문득 들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관습을 거스럴 수는 없는 것....... 그래서 오늘날까지 불평불만 없이 당연히 고향을 찾아 간다. 조상, 부모, 형제간에 만남이라는 것 하나 만으로.....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요즈음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다닌다. 고향에서 이동하긴 다소 불편하긴 해도...... 게다가 두 아들은 지난 달과 이번 달에 한 놈씩 군에 입대하고 나니, 귀향길이 허전한 기분이었다.

 

특히, 올해는 우리 보살의 불편한 손목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내가 전을 부쳐야 할 상황이어서 기꺼이 해보았다. 음식준비를 하기 위해서 시집간 동생이 친정으로 하루 지원을 나왔지만, 내가 나서서 함께 도우면서 하루 종일 음식준비를 해보았다. 매년 명절 때마다 종일 음식준비하는 아내의 입장을 한 번 느껴본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대신하여 우리 부부가 설빔을 준비하면서, 미혼이던 시절 아버님 어머님이 하시던 그 일들을 이제는 내가 이어받아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세월은 이렇게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가운데 고정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이고, 그래서 고가 수반된다는 것이다. 언제쯤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런지....... 늘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20070219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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