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에는 부평에 사는 손아래 동서 댁에 오랜만에 김장 일로 방문하게 되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그 때 마침 2층에서 두 아이가 손을 잡고 내려오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과 유아원에 다닐 정도의 아주 어린 아이들이었다.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나와 서로 눈길이 마주치게 되었다. 큰 아이가 먼저 큰 소리로 아주 밝게 “안녕하세요” 하면서 나에게 인사를 건네자, 작은 놈도 따라서 아주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면서 나에게 인사를 하길래 나도 반사적으로 “그래 안녕” 하면서 인사말로 화답을 하였다.
물론 초면이라서 서로 얼굴을 모른다. 그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은 아주 기분이 좋았다. 먼저 인사를 받아서 라기보다는 전혀 모르는 아이들과 조건 없이 그리고 부담 없이 인사를 나누게 되어서 였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기분 좋은 인사를 초면인 어른들 사이에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순간 ‘아니야’라는 생각과 ‘좋겠다’라는 생각이 교차하였다.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인사를 친절하게 하면, 그 인사를 받은 상대방이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성간인 경우에는 그럴 수가 있을 것이다. 내 경험에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 언젠가 우리집 엘리베이터 안에 나와 초등학교 학생 한 명, 단 둘이 타고 있었다. 잠시 동안 서 있으면서 분위기가 머쓱해서, 내가 먼저 뭔가 말을 꺼냈는데, 대답은 하지 않고, 경계하는 눈빛이 완연해서 더 이상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대꾸를 하지 말라고 가정교육을 받은 학생인 듯해서 내 마음도 무거웠고, 개선해보려던 분위기는 더욱더 머쓱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오늘 일요법회에 가서는 누구에게나 내가 먼저 인사를 한 번 해보자라는 맘을 먹고 절에 나갔다. 나는 법당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위에서 내려오시던 어떤 노보살 한 분이 내려오시다 말고는 정지한 상태에서 아주 공손하게 인사를 먼저 하시는 바람에 내가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데, 위에서 내려오시면서 먼저 나를 본 노보살님께서 인사를 먼저 건네신 셈이다. 물론 기분이 나쁠 이유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내가 미안한 맘이 들었다.
약 3년 전쯤인가, 큰 아들이 미국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처음 미국으로 가는 아들을 도와주려고, 나도 일주일간 연차휴가를 내고 함께 나섰다. 현지에 도착하고 보니, 첫날은 호텔 예약이 되어 있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그 지역 한국인 목사님 댁에서 하루 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그 집(단독주택) 앞 도로변으로 나와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는데,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여자 두 사람이 운동복 차림으로 나를 향해 뛰어오면서 큰 소리로 반갑게 인사말을 건네었다. 아마도 Hi, Good morning! 정도였을 것이다. 그 당시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분명히 나에게 건넨 인사말이라는 것을 알고서 얼떨결에 인사말로 대응하긴 했지만, 내 앞을 지나가면서 다시 한 번 손을 흔들면서 눈인사를 하면서 달리는 두 여자는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순간적으로 참 당혹스러웠다. 이 두 사람은 50대와 30대쯤 되어 보이는 이웃 사람들로서 아침에 조깅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 아침 조용한 주택가에서 그렇게 반가운 목소리로 손짓까지 해가면서 하는 인사에 내가 당황했던 것이다.
미국지역 출장 시 이런 경험은 다반사이다. 복도에서 서로 마주쳐 지나치게 되면, 특히 두 사람이 마주칠 경우, 모르는 사람들 간에 아는 채 하면서 인사를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 이럴 경우, 혹시 내가 상대방을 못 알아봐서 실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식의 인사에 익숙치 않는 나로서는 상당히 신경이 쓰인다. 왜냐하면 내 눈에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모두 비슷해보이기 때문이다. 인사라고 하면 일본 사람만큼 공손하게 하기도 쉽지 않지만, 미국 사람 역시 방법과 어감은 달라도 인사 하나 만은 우리보다 잘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도 모르는 사람들 간에 반갑게 인사말을 건네는 경우가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산행을 하다 보면, 주로 하산 중인 사람이 산을 올라가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힘내세요. 다 와갑니다. 수고하십니다” 등등……. 그리고 마라톤 운동을 하다 보면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리면서 엇갈리는 순간 손을 들면서 “파이팅”,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에도 내가 먼저 라기보다는 얼떨결에 반사적으로 인사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주고 받는다. 이러다 보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서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기가 어렵다. 가끔은 상대방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는데 내가 상대방을 못 알아보는 경우가 있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지나치면서 가볍게 하는 인사인지라 누구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정쩡하게 인사말로 화답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나보고 인사를 건넨 것인지 나 뒤나 옆에 있는 사람보고 인사를 건넨 것인지 혼란스러운 상황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굴까 하면서 신경이 쓰이곤 한다. 아무튼 이럴 때에서 큰 소리로 반갑게 화답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잠시 지나치면서 인사 한 번 잘못( 사람을 잘못 알아보고 ) 했다고 해서 크게 손해 볼 것은 없다.
인사에 대해서 이렇게 내 맘이 불편하고 익숙치 않는 것은 우선은 내 습관의 탓으로 봐야 하고, 크게는 유교문화권의 영향을 받으면서 교육을 받아온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 문화는 서구문명과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서 변화하는 과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가족중심의 유교 문화이다. 그래서 서로가 잘 모르는 사람이면 인사도 하지 않고, 잘 아는 사람이면 지나치게 상대방의 프라이버시 영역까지 침범하는 문화이다. 이 유교 문화가 발상지인 중국에서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아직 보존되어 있는 곳이 대만과 한국이라고 한다. 이 유교문화가 푸대접을 받는 것은 서양의 과학문명 때문이라고 본다. 민주주의, 개인주의, 및 합리주의 문화가 밀려들어 오면서 이러한 유교문화가 점점 밀려나고 있다.
돈 안 들고 인심 쓰기에 아주 좋은 것이 인사이고, 하고 나면 서로 기분 좋은 것이 인사이다. 이런 인사를 습관적으로 잘 할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하고 실천하면 우리 주변이 얼마나 밝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을까? 물론 내가 먼저 변함으로 인해서 내 주변이 바뀔 것이므로 내가 먼저 솔선수범을 해 볼 것이다.
20061126 원경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