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의 불교 >
> 종교탄압 정책 : 1910년 일본에 강점을 당한 후, 종교계는 극심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
> 사찰령 제정 : 1911년 6월 3일 사찰령을 제정.반포 그 해에 사찰령시행규칙을 공포하였다. 사찰의 제반 행정은 조선총독부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이 사찰령은 승려의 취처(대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청정한 수행가풍을 와해하는 한편, 분규의 씨앗을 잉태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당시 일본의 불교정책은 행정은 조선총독부 산하에 예속시키고, 승려들은 세속화시키는 것이었다.
> 조선불교 개혁론 : 일본에 의해 한국불교의 전통이 왜곡되고, 불교발전에 제약을 받게 되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각종 개혁론이 나오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주장은 한용운 스님의 조선불교유신론, 권상로의 조선불교개혁론, 이영재의 조선불교혁신론, 백용성 스님의 대각교운동 등이다. 특히 한용운 스님은 의식 간소화로 불교의 본질을 회복하자. 승려의 취처(오늘날 태고종단)를 허용하여 교세을 확장하자는 주장을 하였다.
> 3.1운동에 참여 : 삼일운동 33인 중에 불교계에서는 한용운, 백용성 스님이 있다. 전국 주요 사찰을 통해서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전국적으로 확산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한용운 스님은 오늘날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학림의 학승들을 조직적으로 편제하여 전국 사찰에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확산하게 하였다. 한편 만세운동 동참에 더 나아가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에, 인천 월미도에서 한성 임시정부 창립을 선언하였다. 그 당시 많은 스님들이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하였다.
> 불교청년운동 조직화 : 1920년에 조선불교청년회가 창립되고, 1921년에 불교유신회, 그리고 1922년에 조선여자불교청년회가 창립되었다. 1928년 분산되어 있던 여러 단체들이 조선불교청년회로 통합되고, 1929년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에 참여하여 중앙종회와 종헌의 제정을 이루었다.
선학원 설립 : 일본의 불교정책과 주지들의 세속화에 반대하면서, 전통불교 입장을 고수하던 수좌들이 전통불교의 보존과 중흥을 위해 1921년 11월에 용성, 만공, 상월스님 등이 협의를 거쳐서 “선학원”을 설립하였다. ( 오늘날 禪學院 )
> 용성스님의 활약 : 1925년 용성스님의 주도로 망월사에서 “萬日禪會結社”라는 참선결사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1926년에는 용성스님의 주축이 되어 100명의 승려가 대처, 식육을 반대하는 건의서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였다.
> 근대교육과 전통강원 : 1906년 명진학교 -> 1910년 불교사범학교 -> 1914년 불교고등강숙 -> 1915년 불교중앙학림 -> 오늘날 동국대학교이다. 한편 1925년 전문강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해인사, 범어사, 개운사에서 강원을 복원하고, 건봉사, 유점사, 통도사 등에서 다시 강원이 문을 열었다.
> 포교와 역경 : 포교문제는 개항 이후, 기독교의 급속한 교세확장에 충격을 받은 불교계에서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였다. 포교당의 확대, 도심 포교당 설립, 문서포교 등 새로운 포교전략을 수립하게 되었다. 전국 본사에서는 도심 포교당을 설치하는데 집중하였다. 한편 백용성 스님은 3.1운동 옥고를 치르고 나서, 1921년에 三藏譯會 조직하여 금강경, 신역대장경, 능엄경, 원각경, 범망경 등을 번역하였다. 당시 편찬한 강원 교재는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 종단운영기관 설립 : 조선불교유신회가 1922년에 “조선불교중앙총무원”이라는 통합기구를 만들었는데, 일본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 “조선불교선교양종교무원”을 출범시켰다. 1924년 4월 “조선불교중앙교무원”으로 통합하였다. 1930년대 중일전쟁에 돌입하면서 전시동원체제 확보를 하기 위해서, 장충동에 박문사(博文寺)라는 일본사찰을 조선불교 총본산으로 정하여 한국불교를 통제하려고 하였다. 이에 반대하는 김상호, 이종욱 스님들이 주축이 되어 총본산 건설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불교의 선교양종을 대표할 수 있는 총본산을 신축하는 불사였다. 1938년 10월 25일 낙성 봉불식을 거행하였다. 이 때 종단명을 조선불교조계종이라 하고, 총본산의 명칭을 태고보우의 법맥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에서 “태고사”(太古寺, 오늘날 조계사)라 하였다. 중앙종회에서는 조계종의 초대 종정으로 방한암스님을 모셨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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