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화기의 불교 >
> 개화사상과 불교 : 이동인 스님의 주도로 탁정식, 이윤고, 차정식 스님 등이 승려 신분으로 개화사상을 실천하는데 동참하였다.
> 이동인 스님의 활약 : 1879년 고종16년에 김옥균의 지원으로 일본으로 밀항, 일본의 문물을 김옥균을 통해서 국내에 전하였다. 고종을 알현하고 국왕의 신임을 받고, 국정을 자문하는 역할을 하였다.
> 승려의 도성출입 금지( 300년간 ) : 도성출입을 어긴 자에게는 곤장 100대에 처한 후 노비로 충당한다. 이 조치는 세종(조선초기) 때 시행되어 19세기 말까지 이어졌다.( 숭유억불정책 ) 1895년 3월 29일 고종이 도성출입금지를 해제하였다. 그 당시 천주교나 개신교의 외국 선교사들이 도성을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는 현실에서, 승려들만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은 명분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왕조 내내 왕실과 종친, 상궁 등의 불교신앙은 억불체제하에서도 중단 없이 이어져왔기에 이들의 영향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정조의 용주사 창건) 1896년 출입금지, 1898년 금지해제 등 금지와 해제가 반복되다가, 1905년 7월에 도성출입에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
> 경허스님의 정혜결사 : 도성출입해금 후 경허스님의 정혜결사가 1899년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자유롭게 불법을 펼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에, 산중불교를 탈피하자는 자각의 움직임이 정혜결사에 담겨있다. 법맥이 쇠잔한 시대에 각처에 선원을 개설하여 새로운 선풍을 진작시켰다. 경허스님의 제자로서는 수월, 혜월, 만공(월면)이 있다.
> 용성스님의 활약상 : 불교계의 포교활동 강조, 교화를 위한 역경불사(한글화), 찬불가를 지어 포교하는데 활용하였다. 그의 제자로서는 동산, 동암, 인곡 등이 있으며, 동산의 법제자로서 성철스님이 있다.
> 대한제국 정부의 불교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사찰 창건 : 1902년 동대문 바깥에 원흥사(元興寺) 창건, 이러한 국가관리체계는 일본의 간섭으로 2년 만에 폐지되었다.
> 불교연구회 창립 : 1906년 불교의 중흥을 위해 불교연구회를 설립하였다. 이 연구회에서는 1906년에 오늘날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명진학교를 설립하였다.
> 원종(圓宗) 종단창립 : 1908년 전국 사찰 대표자 60명이 원흥사에 모여서 이회광 스님을 종정으로 모시고 새로운 종단(조선불교의 대표기관)을 창립하였다. 1910년 도성내에 각황사(종로구 수송동 소재)를 창건하였다. 조선의 억불정책 이후 도성내에 창건한 최초의 사찰이다.
> 임제종 종단창립 :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이회광 종정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불교의 한 종파인 조동종과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대해 조선불교는 조동종과 법맥이 다르다고 비판하면서 박한영, 진진응, 한용운 등으로 구성된 영호남 선원과 강원을 기반으로 임제종을 창립하였다. 원종은 한강이북 금강산 일대의 건봉사와 유점사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임제종은 한강 이남의 범어사, 통도사, 송광사 등을 기반으로 하였다. _()_
'조계종 종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 현대불교 - 해방이후 (0) | 2018.08.28 |
---|---|
한국의 근대불교2 - 일제강점기 (0) | 2018.08.28 |
조계종의 재건 ( 1962년 4월 11일 통합종단 ) (0) | 2015.10.18 |
조계종 승려교육기관 (0) | 2014.12.10 |
조계종 신도품계 제도 (0) | 2014.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