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10월 초순에 개신교 재단이 세운 한 대학교의 종교문화학과 학생들을 만나 '채플 이수 의무제'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열띤 토론으로 생산적인 의견이 많이 제시되었지만 정작 학교의 운영자들과 상아탑을 후원하는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 듣지 못한다면 그 모든 노력이 탁상공론으로 끝날 것이 명백하기에 대자보 지면을 빌려 그 때 학생들과 나눈 내용을 전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의견을 기독교계 사립대학의 모든 운영자들과 관계자들 그리고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진지하게 검토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 강요된 채플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
1995년 숭실대 법학과에 재직 중이던 한 학생이 6학기 동안 채플 이수를 졸업요건으로 정한 학칙이 종교의 자유를 침범한 것이라며, 채플 불참을 이유로 학사학위를 받지 못한 데 대해 '학위수여이행청구소송'을 법원에 제기하였습니다. 당시 1심은 "예배참석의무를 학칙으로 정한 것은 학생들의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고, 1998년 대법원도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종교교육이수를 졸업요건으로 하는 학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강요된 채플'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2003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채플반대모임'이 결성됐습니다. 졸업 때까지 매 학기 1학점씩 8학점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이화여대의 채플에 반대하는 이 모임의 홈페이지에는 "신을 위해 기도할 권리만큼, 기도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나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등 채플 이수 의무제에 저항하는 글들이 실렸습니다.
2003년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학생회는 '기도하지 않을 권리와 기도할 권리의 평등'을 주장하며 집단적인 채플 반대운동을 벌였으며, 2004년 연세대학교에서도 '연세대 채플의 자유화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이 결성되어 채플 거부운동을 벌였습니다.
2006년 11월에는 숭실대학교 학생 두 명이 "예배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채플을 여섯 학기 동안 강제로 들어야 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학교에 학칙 개정을 요구하고 교육부에는 시정명령청구서를 제출했습니다.
한창 진행되던 대학에서의 채플반대운동은 2006년 숭실대 사건을 정점으로 일단 가라앉는 분위기입니다. 2011년 4월에 발생한 이화여대의 채플거부운동은 등록금인상철회를 요구하면서 대응방안으로 채택된 것이어서 순수한 채플반대운동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채플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이 잦아든 이유는 학생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대학의 유연한 대응으로 학생들의 불만이 상당 부분 누그러졌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각 대학이 종전의 경직된 의식 위주의 채플에서 벗어나 힙합, 뮤지컬, 댄스, 가스펠 등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이처럼 종교 교리와 의식을 강요하지 않는 '교양수업식 채플'로 인해 학생들의 호응도가 높아졌으며, 젊은 층에 인기가 많은 연예인 등 유명 인사를 강사로 초빙하기도 하여 비기독교 학생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아졌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기호를 배려하여 눈높이를 맞춘 각 대학의 이런 시도가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요? 또한 내용을 유연하게 한다고 해서 강제참석제도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일까요?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 '즐겁게 참여하는 채플'로 승화시키려는 각 대학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채플 이수 의무제는 여전히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2. 변형된 채플은 신에 대한 결례일 수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사립대학의 채플은 많이 변화했습니다. 딱딱한 예배의식 위주의 채플을 고집하는 기독교계 종합대학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각 대학의 채플은 신나는 노래와 춤, 뮤지컬, 연극, 국악, 무용, 명사와의 대화 등이 이루어지는 젊은이들의 문화공간으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습니다. 공부와 시험에 지친 학생들에게 정신적인 휴양과 더불어 교양인으로서 필요한 감각까지 갖추게 해주니 한편으로 다행스럽고 고맙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변신을 시도하는 기독교학교와 함께, 또한 기독교정신을 구현하고자 설립한 대학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꼭 한 가지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가 있습니다.
학생들의 기호에 맞춘 변형된 채플, 이대로 좋은 것일까요? 우리가 ‘예배’라는 말의 대용으로 쓰는 ‘채플’이란 단어는 원래 '작은 예배당' 또는 '부속 예배당'을 뜻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원래 채플은 기독교정신을 토대로 설립된 대학에서 교직원과 학생들이 함께 인격신에게 경배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신에 대한 경배의식'이 빠진 채플을 채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기독교는 절대자를 인격신으로 고백하며 그 인격신과 종교적 또는 영적으로 교류하는 종교입니다. 예배의식을 통해 인격신에 대해 사랑을 고백하고 헌신을 다짐하며, 성직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신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기도 합니다. 이런 요소는 인격신종교에서 종교의식의 필수요소입니다.
종교의 예식은 저마다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와 같은 인격신 종교의 예배는 세속문화로 대체할 수 없는 신성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신에 대한 경배, 정숙하고 엄숙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영성의 체험, 절대자 앞에 자신을 돌아보고 뉘우치며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삶의 전환 등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예배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속문화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제가 종립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채플문화의 변화에 대해 갖는 우려는 제도의 껍질을 지키기 위해 내용을 바꾸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의 예배의식이 세속문화로 대체해도 좋을 만큼 '별 볼 일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젊음의 발산은 좋습니다. 춤도 노래도 교양강좌도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채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을 기독교의 인격신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계실까요? 어쩌면 그것이 기독교의 종교적 품위를 떨어뜨리고, 하느님은 물론이고 경건하고 거룩해야 할 예배 자체까지 모독하는 것은 아닐까요?
3. 제도적 강요보다 내용으로 승부하라
각 대학은 싫다는 학생을 억지로 예배에 참석시키는 일이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운 현실을 간파하고 변화를 모색했습니다. 종교적 의식이 강요되지 않는 채플, 문화적 교감을 통해 함께 즐길 수 있는 채플로 학생들과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배의 중심내용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모든 학생을 강제로 채플에 참석시킬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이렇게 하면서까지 채플을 교양필수과목으로 지키는 것이 과연 기독교학교의 설립이념에 충실한 것인지 기독교대학 당국과 한국 교회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대학 당국 뿐 아니라 한국 교회를 언급하는 이유는, 채플을 교양필수과목에서 해제하여 교양선택과목으로 전환하는 것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데 대해 많은 대학 관계자들이 동의하면서도 선뜻 제도화하지 못하는 이유가 대학의 재정을 지원하는 한국 교회의 보수적 교회 지도자들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 근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자면, 선교는 교회에 맡기고 학교는 교육기관이므로 교육만 열심히 하면 좋겠습니다. 길게 보면 그것이 선교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채플을 꼭 해야 한다면 교양선택과목으로 과감히 전환하여 원하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게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학생들에게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바람직한 선택이며, 기독교학교로서의 품위도 지키고, 또한 기독교가 사회의 존경을 받는 종교로 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기독교학교인 하버드대학은 1986년 의무 채플을 중단하고 현재 매주 20분씩 약 60여명의 학생이 자율적으로 채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학교인 도시샤대학은 이미 60년대에 채플이 자율화됐습니다.
종교의 자유란 '종교를 선택할 자유'와 '종교를 거부할 자유',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선교할 자유', '종교를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교육할 자유'를 모두 포함합니다. 학교의 '종교교육을 할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듯이, 학생들의 '종교를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도 당연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 <공동선> 2011년 11+12월호에 실린 글이며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