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가 연일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하 종자연)에 대한 공격을 퍼붓더니 급기야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라는 단체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단체는 “종자연의 실체가 불교단체로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민단체라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종자연이 불교단체임을 알고서도 모든 종교의 종교편향실태 조사를 허락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불공정 계약이며, 인권위의 이러한 조치는 종교말살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종교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탄생한 범종교시민단체를 특정 종교단체로 몰아가는 이런 편향적 보도가 자칫 종교간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는 위험한 주장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일을 저지르는 것인가? 혹 이런 보도가 강의석 사건 패소로 인한 기독교학교의 강제종교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에 의한 것이라면 제 발등을 스스로 찍는 어리석은 짓임을 자각해야 한다.
국민일보의 왜곡보도에 의한 시민들의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해 종자연 출범에 처음부터 관여한 사람으로서 종자연의 역사와 운영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1. 종자연은 출발부터 범종교시민단체였다
나는 종자연 출범부터 뜻을 함께 한 창립멤버이기에 창립 의도와 과정을 세세히 알고 있다. 종자연은 2004년 “학교에서 예배 참석을 강제하지 말고 선택권을 달라”며 학교내 종교자유를 주장하고 시위를 벌인 소위 ‘강의석 사건’을 계기로 다음 해인 2005년에 탄생했다. 그러니까 종자연은 그보다 몇 개월 앞서 출범한 학자연(학교종교자유를위한 시민연합)과 함께 ‘종교로 인해 발생하는 인권 보호’를 위해 탄생한 시민단체다.
학자연은 내가 발의했고 새길교회 교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탄생한 시민단체이므로 기독교단체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웃종교일 뿐 아니라 무종교인 등이 함께 참여한 범종교시민단체로 출범했다. 종자연 역시 불자인 박광서 교수와 참여불교 재가연대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되었기에 불교단체라는 의심을 샀지만 개신교인과 천주교인 무종교인 등이 함께 참여한 범종교시민단체로 출범한 것은 학자연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학자연과 종자연은 처음부터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많은 자매단체로 활동했다.
학자연은 강의석의 단식을 종식시키고 그가 진 짐을 기성세대가 대신 져야 한다는 사명감에 쫓겨 2004년 9월에 서둘러 창립 기자회견을 가졌다. 새길교회의 지원에 힘입어 괜찮은 조직을 갖고 출범했지만, 재정과 운영 등 여러 문제를 순조롭게 풀어가지 못하고, 2008년 12월 17일 임원회의를 통해 종자연과의 통합을 결정했다.
반면 학자연보다 몇 달 늦게 출범한 종자연은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어 갔다. 특정종교에 속한 단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범종교계 인사들의 참여를 요청했고, 기독교와 불교, 원불교 등의 성직자와 학계 법조계 여러 인사들이 폭넓게 참여했다. 이 점은 지금도 종자연 홈페이지 조직도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종자연에 참여했던 누군가가 종자연을 불교단체로 잘못 이해했다고 하여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2. 종자연과 학자연(학교종교자유를위한시민연합)의 통합
나는 종자연의 출범과 관련하여 박광서 교수와 여러 차례 의견을 교환했고 기독교계 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조언을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학자연과 종자연은 많은 공통성을 갖게 되었고, 공동대표의 절반 이상이 서로 겸직하는 등 처음부터 자매기관으로서 위상이 정립되었다.
일의 성격과 방향이 거의 같아 두 단체가 통합하는 건 자연스런 흐름이 되었고 이후 학자연과 종자연은 하나로 통합하여 학자연이 종자연 내 학교종교자유위원회로 자리를 잡았으며 내가 그 위원장을 맡았다. 이처럼 진보 기독교인들이 주축이었던 학자연과 통합한 종자연이 불교단체라는 주장은 종자연의 탄생 의도와 과정, 학자연과의 관계 등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내린 잘못된 결론이다.
국민일보의 보도가 계속되면서 내가 종자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나는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종자연 활동에서 떠난 적이 없으며, 지금도 자문위원을 맡아 종자연의 정책과 과정에 대해 보고받으며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종자연을 불교단체로 몰아가려는 시도는 사실과 맞지 않는 억지일 뿐 아니라 종교간 갈등을 부추기는 위험한 일이다. 우선 창립 멤버인 내가 기독교인인데 어떻게 불교단체가 될 수 있는가? 또한 지금도 지도위원이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기독교인 학자들과 법조계 인사들, 원불교 등 이웃종교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자연을 불교단체로 몰아가는 게 가능한 일인가?
또한 국민일보는 개신교에 대한 비판이 종자연 활동의 주를 이룬다는 점을 들어 종자연에 대한 비판기사를 계속 싣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개신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일이지 종자연의 정체성을 의심할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종교로 인한 갈등을 일으키는 주요 종교인들이 누구인지 양식 있는 시민들에게 물어보라. 개신교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와 그로 인한 공격적 선교정책이 온갖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가? 가해자가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다면 문제가 해결되기는 매우 어렵다. 개신교인으로서 매우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3. 종자연과 참여불교재가연대의 관계
국민일보는 현재 종자연이 참여불교재가연대의 ‘특별기구’로 되어있다는 점을 들어 종자연을 불교산하단체로 몰아가고 있다. 종자연이 참여불교재가연대의 특별기구로 되어 있는 이유는 창립 초기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때 재가연대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종교시민운동으로 시작한 종자연이 불교기관의 ‘산하기관’이 될 수는 없었기에 재가연대는 종자연을 ‘특별기구’로 정해 지원했던 것이다. (이 점은 학자연이 새길교회 교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새길교회 산하기관이 될 수 없었던 것과 같다.)
종자연의 구성만 봐도 불교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자 국민일보는 재가연대와의 관계를 들어 종자연을 친불교단체 또는 불교계열단체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 하지만 종자연은 물론이고 종자연과 협조를 주고받는 참여불교재가연대도 친불교단체가 아니다. 오히려 불교계에서 일어나는 비리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재가자 중심의 개혁단체다.
예를 들어 한국교회 개혁을 외치는 대표적 기관인 교회개혁실천연대 같은 단체를 친기독교단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단체가 기독교단체인건 분명하지만 친기독교 단체가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 주류 세력들이 껄끄러워하고 싫어하는 단체가 아닌가? 재가연대 역시 불교 내 일부 주류세력이 불편해하는 불교 내 개혁단체이지 친불교단체가 아니다.
현재 종자연에 다른 종교인에 비해 불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범종교시민단체로 출범한 종자연이 장차 넘어서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불자들이 참여하는 비율만큼 기독교인들도 종자연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자연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이 통합 이후 종자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이다. 이 문제엔 내 책임이 크다. 양자 통합 이후 더 적극적으로 활동했어야 했는데 생계문제에 쫓겨 그렇게 하지 못했다.
종자연이 불교단체라는 오해를 받지 않고 우리 사회의 종교자유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깨어있는 기독교인을 비롯하여 양식 있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
4. 종자연이 종교 갈등을 부추긴다는 주장은 적반하장
최근 사태와 관련하여 원론적으로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종자연은 개신교 일부 단체나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탄생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학교에서 일어나는 학생인권 침해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탄생되었다. 기독교학교의 종교인권 침해가 없었다면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을 단체다.
여기서 기독교학교의 강제종교교육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해묵은 토론에 지면을 많이 할애할 생각은 없다. 단지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학교에서 강제종교교육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은 ‘강제종교교육’과 ‘종교교육을 할 자유’를 혼동하고 있거나 고의로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 인권을 탄압한 가해자가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특정종교예식을 전체 학생에게 제도적으로 강요’하는 것을 ‘종교교육을 할 권리’라고 주장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번 말했지만, 강의석은 대광고에 “종교교육을 하지 말라”고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만 “학교가 종교교육을 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학생들도 종교를 강요 받지 않을 자유가 있으니 예배에 강제로 참석시키지 말고 선택권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간단하다. 강의석의 요구대로 학교는 소신껏 종교교육을 하되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면 된다. 제도적으로 강요하지 말고 내용으로 승부하라는 말이다. 왜 예배라는 특정종교예식에 대해 교회가 아닌 학교에서 전체 학생들의 참석을 강요하는가? 그것은 명백히 종교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5. 종교 갈등 일으키는 주축은 개신교 지도자들
종교 갈등을 일으키는 주체 세력들이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갈등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를 향해 “종교 갈등을 일으키지 말라”고 주장하니 어이가 없을 뿐 아니라 슬프기도 하다.
개신교 지도자들과 학교 관계자들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라. 개신교학교의 강제종교교육을 불교학교가 그대로 따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개신교학교가 학교예배에 전체 학생을 강제로 참석시키듯이 불교학교들도 시간표에 예불시간을 집어넣고 전체 학생에게 참석을 강요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대광고를 비롯해 개신교학교 운영자들이 학생들에게 선택권 주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독교는 사람이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여러 종교 중의 하나’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반드시 믿어야 하는 ‘절대 유일의 종교’라는 배타적 교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조직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사람도 있지만 “기독교 신자가 되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기독교에 귀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선하고 바른 삶을 살아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는 이천 년 전 원시교리를 절대 진리라고 믿기에, “국어 영어 수학을 잘 가르치는 것보다 예수 믿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기독교학교의 최우선적 사명”이라고 진정으로 믿고 순교적 사명으로 신념을 지켜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원시 교리와 진리를 구분할 줄 모르는 이들의 무지와 고집이 더욱 무서운 것이다.
실제로 2005년 대광학원 교사시무식에서 이 학교 이사장은 “교육보다 선교가 우선”이라고 교사들에게 설파했다. 이런 무서운 편견과 배타에 사로잡힌 종교가 한 사회에 둘 이상 존재하고 자신의 신념을 적극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면 그 사회는 파멸을 면하기 어렵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다종교사회이면서도 자신만이 옳다는 배타 종교가 개신교 이외에는 크게 세력화되지 않았고 아직까지는 이웃종교들의 너그러운 대처로 큰 갈등은 피해가고 있지만, 지구마을 여러 종교와 문화가 급속히 만나는 앞으로의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 갈등이 첨예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신교인들의 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이유가 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