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2008년 05월 15일(목)
부처님 오신 날 보낸 대통령 시주봉투 봉은사가 거절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이명박 대통령에게 불교계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뜨거운 감자'다. 대통령 본인이 교회 장로 출신이라는 핸디캡에다 서울시장 시절에 했던 '서울 봉헌' 발언도 불교계 인사들의 기억에 아직 뚜렷하게 남아있다. 고소영 내각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소망교회'도 청와대의 불교계 컴플렉스를 자극하는 요인 중 하나다.
청와대도 불교계에 적잖이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달 선거개입 논란을 무릅쓰고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스님의 조문을 위해 충남 예산 수덕사를 직접 방문했다. 후보시절 주성영 의원을 캠프로 영입해서 수행실장직을 맡긴 것도 주 의원이 불교계와 교분이 두텁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불교계와의 악연은 계속됐다. 지난달에는 대표적 불교계 원로인 법정스님이 '한반도 대운하는 국토에 대한 무례'라고 비판한 데 이어 지난 12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대통령 명의로 보낸 시주금 봉투를 봉은사 주지스님인 명진스님이 화를 내며 되돌려보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
명진스님은 시주금이 담긴 봉투를 강남구청의 과장급 공무원이 들고 온 것을 두고 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서는 봉은사가 참여정부 때는 영부인이 다니던 사찰이었는데 정권이 바뀐 후에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서운함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내놓고 있다.
청와대는 15일 "대통령 명의의 축하전문을 전국 1200여개 사찰에 보냈다가 초파일 이후에 도착할까봐 이를 취소했다는 보도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적극 반박했으나 사안의 핵심인, '시주금 봉투를 되돌려 보낸 봉은사 주지스님' 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 불교신자모임 대표인 외교안보수석이 직접 찾아가 충분히 설명을 드렸다'고만 해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모든 사찰을 직접 방문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지방자치단체에 시주금을 대신 전달하도록 한 것"이라고 억울해하면서도 자칫 해명내용이 다시 불교계를 자극하지 않을 지 조심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시주금을 들고 온 사람의 직급을 문제삼아 까탈스럽게 대응했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봉은사 측이 역풍을 맞을 경우 청와대의 입장이 중간에서 또 난처해질 수 있기 때문.
청와대 관계자는 "전국 사찰에 축전을 보낸 것은 과거 정권에서는 하지 않았던 일"이라며 "불교계와 친분이 있는 모 의원이 지난 8일 저녁에 이 아이디어를 내서 9일 아침에야 보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와 불교계의 악연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김영삼 대통령 재임때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에도 YS가 정부가 불교계와 소원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청와대는 청와대 내부의 불교신자 모임인 '청불회'를 결성해서 불교계와의 관계 회복에 힘을 기울였다. 이번 사건이 불거진 후 봉은사로 직접 찾아가 봉투 문제에 대해 해명했다는 김병국 외교안보수석이 이명박 정부의 청불회 회장이다. 이밖에 박재완 정무수석비서관, 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 김은혜 부대변인 등도 청불회 멤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사찰을 직접 방문해서 인사를 하려면 하루에 서너곳을 다니기도 벅차다"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데 이런일이 생겨서 아주 곤혹스럽다"고 했다.
이진우(기자) v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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