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대승불교의 경전은 어디까지가 부처님 말씀이고 어디까지가 방편으로 설해져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자주 생긴다. 더러는 회의적인 생각마져든다. 그래서 부처님 입멸 후 최초로 씌여졌다는 숫다니파타 외에 다수의 초기경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다소 더디더라도 위빠사나 수행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이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무신론이라고 주장하는데 화엄경 경전에는 수 많은 신들이 등장하고, 육도윤회의 천상부터 대웅전의 신중탱화가 있으니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 것인지? 종교는 반드시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신비로움을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으로 대승불교에 관심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간화선이 무엇인지? 이런 선법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인 배경, 그리고 실참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하는 강의를 지난 주와 이번 주에 각각 3시간씩 듣고보니, 대승불교의 수행법이자 조계종의 수행법인 간화선에 대해서 귀가 솔깃해진다. 그러나 쉽게 의심(인생의 궁극적인 궁금증)이 일어 나지 않는다. 즉 화두가 들리지 않는다. ( 선지식 ) ~~ 학인스님!, ( 학인스님 ) 예, ( 선지식 ) 방금 "예"라고 한 것이 뭡니까? ( 학인스님 ) 마음입니다. ( 선지식 ) 그것은 이름일 뿐입니다. 그것의(마음) 실재가 무엇입니까?
"마음의 실재"라~~~, "마음"은 관념이고 이름에 불과하다, 그리고 내 몸 안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마음의 "실재"라는 것이 뭘까? 머리를 쓰지 말고 몸으로 답하라. 답은 온 몸으로 나온다. 예를 들어, 만일 선생님이 한 손에는 보드마커 실물을 손에 들고, "이게 무엇입니까"( 이 뭣꼬? )라고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어보는 상황을 가정해보십시다. 학생들이 "Board Marker" 라고 말로 표현할 것입니다. 이 때 Board Marker라는 것은 문자 혹은 언어이다. 문자와 언어는 관념적인 표현이고, 그 실물은 선생님이 손에 쥐고 있는 보드마커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실재.실물은 무엇일까? 그 실물은 말로 문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몸으로 드러내 보일 수는 있다. 그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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