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 명상 )

위빠사나 수행체험

圓鏡 2014. 8. 2. 18:31

지난 7월말부로 퇴직을 하게 됨에 따라, 갑자기 여유시간이 많아져서,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던 차에, 10년전 2월( 2005년도 )에 뭔지도 잘 모르고 따라 갔던 호두마을이 생각나서 "3일(7/29~7/31) 정도 조용히 쉬었다가 오자"라는 생각에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었다. 그것도 혼자서 ~~~

 

3일 수행을 잘 마치고 오후에 귀가하던 길에 걸어서 귀가하는 젊은 친구 한 분을 태웠는데, 인사차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개신교 신자였다. 의외였다. 교회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어서 배우려고 이 수행 프로그램에 동참했다고 하면서, 약 1년 전에 과천 선바위역 부근에 있는 '보리수선원'에서 위빠사나 수행 기본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하기야 2005년도 수행프로그램에서도 기억나는 것은, 카톨릭 신자도 있었고, 그리고 개신교 목사 부부가 호두마을 수행하는데 동참했었다. 이렇게 위빠사나가 좋은 건가?  종교를 넘어서 관심을 가질만한 갚어치가 있는 수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젊음 친구는 안성 톨게이트에 좀 내려달라고 해서 내려주고, 전화받고 다른 생각을 잠시하다가 안성ic에서 서울방향이 아니라 다시 천안방향으로 들어서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왕복 40킬로 가량을 더 운전하게 되었다.

 

홈페이지 약도를 참고하여 승용차로 도착하고 보니,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주변에 숙박시설이 많이 늘어난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에는 귀촌 독립가옥들이 몇 집 보이고, 뒷쪽에는 만복사라는 현대식 건물의 절이 들어서 있었다. 처음 갔을 때에는 왜 "호두마을"일까라는 궁금증을 풀지 못 했는데, 이번에 가보니까 수행센터 주변과 뒷산에는 온통 호두나무가 서 있었다. 호두나무 가지 끝마다, 탁구공만한 호두가 꼭 두알씩 쌍으로 달려 있었다. 아, 그래서 호두마을이라고 하는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아신 빤디짜 사야도(스승)의 집중수행 45일 기간 중에 3일 동참하게 되었다. 나처럼 중간에 3~4일씩, 1주일씩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종무소에는 많은 사람이 수시로 접수하고 나가고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미얀마 출신의 사야도는 놀라울 정도로 한국어 구사를 잘 하시고, 특히 어휘력이 풍부하여 비유법이나 사례를 들어 설명을 잘 해주셔서 참 인상적이었다. 다만 발음이 서툴긴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아, 국제포교사가 되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스님의 약력을 잠시 보니, 10년 전부터 한국을 들락거리시면서 위빠사나 수행지도를 해오시고, 부산과 다른 지역에도 지도를 해오시고 있었다.

 

사실 좌선과 행선은 육신의 통증으로 큰 효과가 없었고, 단지 집에서 명상하던 것에 비하면 잡념이 비교적 적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도 현재 나의 주변상황과 그 곳의 물리적 조건이 우리 집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아서, 비교적 집중력이 개선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한 번의 초심자 단체 면담과 한 번의 개별면담이었다. 그리고 세 번에 거쳐서 십이연기법에 대해서 단계별로 수준을 높여가면서 상세하게 법문을 해주셨다.

 

(1) 수행자들은 반드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사성제, 십이연기법을 깨우쳐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도 있는지?  만일 동일하게 사성제와 십이연기법을 깨우쳐야 한다면, 이미 불교교리 교육을 통해서 이것을 이해하고 알고 있는데, 깨우침과 차이점이 있는지?  그리고 깨달은 후에 뭐가 달라지는지?( 깨달음의 세계는 어떠한가? ) => 그렇다. 연기법.인과법(사성제)을 깨우쳐야 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은 지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 스스로 수행과 사고를 통해서 깨달은 것(지혜)과는 다르다. 깨닫게 되면 당장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12연기, 무명부터 수(느낌)까지는 범부와 부처.아라한이 꼭 같다. 그러나 붓다와 아라한은 그 다음 단계인 애(갈애)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수 단계에서 멈춘다. 즉,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 깨달음의 단계에는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단계가 있는데, 수다원과만 얻어도 의심과 사견이 사라지게 된다.

 

(2) 집에서 명상수행을 하다보면, 졸음이 오고 잡념(번뇌,망상)에 사로잡혀 명상이 어렵다. 이 잡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 현재와 같이 지속적으로 명상수행을 하는 것이다. 잡념이 점차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제한적으로 알아차림 수행을 하지 말고,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만 제외하고 늘 깨어 있어서 알아차림 수행을 하라.  심지어 음주를 하는 그 순간에도 위빠사나 수행을 할 수 있다.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해보라.

 

(3) 생물학적으로는 수 십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우리 몸은 약 100일 기준으로 거의 모든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교체될 정도로 순간순간 큰 변화를 하기에, 고정된 실체로써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아라고 하는데, 우리 인생 60년 내지 80년이라는 긴 시간에 비하면 순간순간 변화하는 이러한 것을 무시할 정도 아닌가?  무슨 큰 의미가 있는가? => "무아"를 제대로 깨우치지 못 하였기에 오늘 현재처럼 범부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현실이 고통스럽다. 예를 들면,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의 날개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듯이 우리가 사물과 현상을 냉철하게 제대로 꿰뚫어 볼 수 없기에, 알아차림 수행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현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모르고 있을 따름이다.( 무지. 무명 )  명상수행을 통해서 무아.고.무상을 체험하고 깨달아야 붓다가 되고 행복을 맛볼 수 있다. 무명의 정확한 정의는 모른다는 것보다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뜻한다. 즉, A를 A로 알아야 하는데, B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무명이다.

 

(4) 십이연기법( 24연기법도 있다. 보다 더 상세하게 세분화해서 설명하고 있다. )

12연기에는 과거생과 현재생에서 각각 한 번씩, 번뇌->업->과보의 바퀴를 돌고 있다. 즉 과거생에는 無明 ~ 受까지이고, 현재생은 갈애부터 노사까지이다.

번뇌 : 무명, 갈애,

   : ,

과보 : , 명색, 육입, , , , 노사

 

(5) 초심자 그룹면담

- 위빠사나 수행 초심자는 먼저 수행욕심(목표.일정등)부터 줄여라. 그리고 위빠사나를 믿고 배운대로 꾸준하게 수행하라. 중간에 하루 이틀 빼 먹더라도 꾸준하게 하라.

- 오후 불식 이유 : 남방에서는 가능하다. 스님들이 명상 외엔 다른 것으로 하지 않으므로, 그러나 한국 스님들은 좀 다를 수도 있다. 포교와 절 살림으로 일을 많이 하시기에,,,,, 그러나 한국사람들 잘 생각해보라. 과연 살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만 먹는지?  먹고 싶은 욕망( 식욕 ) 때문에 과식( 칼로리 over )하는 것은 아닌지?  명상수행하는데 과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식이 좋다.

- 좌선을 꼭 해야 하나? 그렇지는 않다. 다만 좌선이 집중력이 높기 때문에 좌선을 선호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이 한 가지 동작(좌선이든 무엇이든)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서 집중력이 다소 떨어지긴 해도 행선을 겸해서 하므로써 육체적인 고통을 줄이면서 수행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다.

- 사람의 욕심 : 가장 강한 욕심은 식욕, 성욕, 수면욕이다. 한계상황에 다다르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체면을 무릅쓰고 이 세 가지의 욕심을 부린다. 8계 중에서 여섯번째 몸 치장, 노래, 춤 추지 말라는 것은 오계의 3번째 음란한 짓을 하지 말라는 것과 연계되어 있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라. 몸치장 하는 이유는?  노래부르고 춤추다보면 음란한 짓을 할 가능성이 커지게 되어 있다.

- 마음치유에 대해서 도움 말씀. 특정인을 생각만 해도 쉽게 마음이 힘들고 지친다.( 스트레스 받는다 ) ; 그것은 본인 탓도 있다. 상대방의 잘 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본인이 상대방에게 그렇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수행을 통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상대방으로 인해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수행이 부족한 것이고, 내 탓으로 보면 된다. 물론 그런 원인제공을 하지 않으면 그럴 이유도 없긴 하겠지만, 나의 주인공은 나다. 상대방이 아니다. 왜 내가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따라 일희일비하면서 나의 행복과 괴로움을 상대방에게 끄달려야 하느냐?  그럴 필요 없다. 나는 나다. 내가 나의 주인공이지, 상대방이 나의 주인공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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