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포교원 책자, '불교개론'에서 발췌]
삼보에 대한 믿음
l 참다운 불자가 되려면, 삼보에 귀의하라. 삼보를 믿고 의지하라.
l 삼귀의 = 세 가지의 피난처 = 의지한다 = 참다운 진리의 세계에 안주하여 살아간다.
l 신앙을 통해 우리는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장소, 오랫동안 의지할 수 있는 편안하고 평온한 장소를 얻는다.
l 불교를 믿기로 결심한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 발심한 마음을 잃지 않고 정진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나태하지 말고 바르게 신행해야 한다. 이것이 발심( 발보리심 )의 참다운 모습이다.
계.정.혜의 실천
l 왜 고통스러울까?
l 왜 우리는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친 걸음을 옮기는 것일까?
l 왜 잠시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l 불교에서는 그것을 탐진치( 탐욕, 분노, 어리석음 ) 때문이라고 한다.
l 이 삼독심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l 탐욕심은 청빈하고 맑고 깨끗한 생활인 戒로써, 분심은 급하게 올라오는 마음을 잠재우는 깊은 선定으로써, 어리석은 마음은 무아, 공으로 보는 지慧로써 다스린다. 삼독심을 계.정.혜 삼학으로 다스리는 것이 곧 수행이요 신행생활이다.
계를 지키는 삶 ----------------------------------------------------------------------------
l 누구나 어두운 곳보다는 밝은 곳에 머물고 싶어한다.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둠을 밝혀줄 등불이다. 만일 등불이 없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고, 마침내 넘어져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l 여기서 등불이 바로 진리의 가르침이고, 밝은 빛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계율이다. 진리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계율은 우리의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
l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잘 지키면 저절로 밝은 지혜가 생겨난다고 말씀하셨다. 불자들은 함부로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계율의 진정한 의미이다.
l 계는 산스크리트어의 시라(sila)에서 율은 비나야(vinaya)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계와 율은 불자의 윤리 또는 삶과 수행의 규범이다.
l 그러나 계는 자발적으로 지켜야 하는 도덕이며, 율은 승가의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타율적 행위규범이다.
l 따라서 율을 위반하게 되면 벌칙이 가해지지만, 계에는 그러한 벌칙이 없다. 그러나 계를 어기게 되면 마음에 괴로움이 일어난다. 그래서 계를 어기게 되면 참회를 해야 한다.
l 재가불자들이 수지해야 하는 기본적인 계는 오계이다.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이다. 이것은 금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전제로한다.
l 악을 범하지 말고 선을 실천함으로써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 오계의 목적이다.
l 개차법 : 계율에서 필요한 지범개차( 개차법 ) = 持犯開遮
n 지 持 : 계를 지킨다는 의미
n 범 犯 : 계를 어긴다는 의미
n 개 開 : 계를 지킬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에서 어김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
n 차 遮 : 그 부득이한 상황이 종료되면 다시 닫는다는 의미( 開의 반대 의미 )
n 개차 의미 : 계율을 지키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제약하거나, 그 계를 지키기 위해 더 큰 계를 어겨야 하는 경우이다. 그런 상황이 타개될 때까지 열고(개開), 그 상황이 종료되면 닫을(차遮) 수 있어야 한다.
l 계율에 얽매이게 되면 계의 정신에 어긋난다. 계는 수행자의 심신이 더 이상 오욕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번뇌에 휘둘리지 않고 두려움 없이 평온한 상태로 이끌어 주는 동반자여야 한다. 계를 지키는 것은 성실하고 참된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이며 발원이므로 자유롭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l 계는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규범을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지키는 것이다. 계율은 불자의 생활윤리, 삶과 수행의 규범이다. 삶의 가치관으로 삼아 자신의 삶을 성실하고 참되게 하는 길잡이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l 참회 : 불자가 오계를 지키면서 살아가더라도 잘못을 범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매 순간 욕망이 싹트고,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때로는 판단을 그르쳐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때마다 부처님 법을 따른 불자임을 명심하고 하루하루를 되돌아보며 참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l 懺 이란 지나간 허물을 뉘우친다는 의미이고, 悔란 앞으로 지을 죄를 미리 깨닫고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허물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허물이 있으면 뉘우치는 것이다. 그러면 죄업은 날로 줄어들고 마침내 도를 이룰 것이다.
l 참회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하여 정진의 강한 동기가 된다. 끊임없는 반성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올바르게 깨달음을 향해 가고 있는지, 초발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선정의 힘 ----------------------------------------------------------------------------------------
l 명상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은 물론 그 평화롭고 안정된 마음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명상이 일종의 선정이다.
l 선정이란 어느 한 대상에게 깊이 집중해 들어가는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몸과 마음을 기울여 한 대상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의 작용이 그치고 아주 고요한 상태로 들어간다. 이것을 三昧라고 하고 定이라고 번역한다.
l 바른자세로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소리, 호흡, 호흡의 움직임에 가만히 집중해보라. 마음이 고요해지고 맑고 투명해질 것이다. 바로 거기서 지혜가 싹트는 것이다.
지혜로운 삶 --------------------------------------------------------------------------------------
l 맑고 고요한 마음에서 지혜가 싹튼다. 선정과 지혜는 연결되어 있다.
l 지혜란 무엇인가? 지식이 보태는 공부라면, 지혜는 덜어내는 공부이다.
l 지식이란? 이성적인 생각의 작용을 통해 사태를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다. 대상을 나와 분리시켜 나누고 비교하며 판단을 하게 된다. 생활하는데 도움을 받는다. 지식은 나를 중심에 두고 나와 너를 나누고 시비를 가리기 때문에 내 입장을 고수하기 마련이어서 한 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다. 결국 대립과 분쟁이 일어난다.
l 지혜란? 나를 비우는 것이다.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상대의 고통을 없애주고 기쁨을 주는 자비로운 마음도 이 지혜의 안목에서 분출된다. 그래서 불교는 자신을 낮추는 공부를 강조한다. 이것을 하심이라고 한다. 어느 누가 나를 멸시하더라도 털끝만큼도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겸손하라는 것이다. 무아, 무상, 연기, 공은 지혜를 일컫는 것으로 모두 자신을 낮추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공부가 제일이다.
l 진정 자신을 낮출 때만 남을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의 마음을 부처님의 법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 --------------------------------------------------------------------------------
l 합장은 믿음의 출발, 자신의 마음의 표현, 하나의 진리 위에서 너와 나의 마음이 만남을 뜻한다. 존경과 진실과 자비의 마음을 뜻한다.
l 불공은 일체의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고,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며, 열반의 길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의 표시이다.
l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푸는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기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과 다름없으며, 이 세상을 더욱 맑고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l [법구경]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 실행하지 못하는 게으른 사람은 / 남의 소를 세는 목동과 같아 / 수행의 보람을 얻기 어렵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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