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고려시대 이후로 600년 이상 제도권 바깥에 머물러야 했다. 지금도 그리스도교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30대 청년 붓다가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오늘날 불교도는 평균 나이가 60대이다. 예수도 젊었다.
석가모니 붓다는 늘 걷고 또 걸었다. 오늘날 이판승은 산중에서 늘 앉아있다. 한소식하겠다고, 깨닫겠다고.......
"깨달음 지상주의"가 오늘날 불교계의 소통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깨달음에 대해서 신비화하고, 비판금지? 왜냐하면, 깨달음을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깨달음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하기 때문이다. (ex) 우리는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서도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누구나 과학적인 사실로 믿고 있듯이....
천주교는 교리가 명료하다. 반면 개신교의 교리를 모호하다. (ex) 믿음을 강조하는 개신교 신자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한다. 이렇게 표현(믿음이라는 단어.용어)은 있으나, 내용이 모호한 단어가 힘을 발휘한다. 혹시 불교의 "깨달음"이라는 단어가 그런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