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맞이하는 설날, 하루 앞둔 지금, 올해는 동생 가족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아내를 중심으로 우리집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차례상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달 중순과 하순에 거쳐 12일간(1/14일~25일) 인도에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조계사 선림원( 참선반, 남전스님 ) 11기? 졸업생들과 함께 경기불교문화원( 진 원장님 )에서 아홉분이 함께 다녀왔다. 수 년 전부터 이제나 저제나 하다가 손자 케어하느라고 못간다고 하는 보살을 떨쳐놓고 혼자서라도 다녀와야 겠다고 맘 먹고 나섰다. 지금도 내내 미안하긴 하다. 혼자다녀오게 되어서..... 4대 성지를 포함한 7대 성지(상카시아 제외)를 비행기, 열차, 버스, 걸어서 순례를 마쳤다. 부처님의 흔적을 따라 순례를 하였지만, 불교문화적인 측면으로 다가왔고, 신심이나 감흥이 크게 일어나진 않았다. 카메라도 있긴 하지만 눈으로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은 어느 곳이든 일어났다. 언제 다시 이 곳을 와보겠는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눈으로 여기저길 보고 싶은 욕심만은 늘 가지고 다녔다.
이번 기회에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12일이라는 시간이 길어서 일정상 이런 저런 사정이 겹치긴 해도 연초이니까 이 때가 가장 적절할 때였던 것 같다. 해외여행이라면 새벽같이 출발하던 것과는 달리 오후 2시경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에어인디아를 타기 위해서 아침에 느긋하게 집에서 출발하는 기분이 좋았다. 영상의 날씨는 아니더라도 날씨도 포근해서 출발하기에 좋았다.
인천공항 -> 델리공항 -> 국립박물관(석가모니 진신사리 친견. 소참법문) -> 바하이사원 5분 명상 -> 바라나시 투숙(항공편 이동) -> 갠지스강(항하사) 일출 -> 불영탑(성도 후 5비구를 만난 곳, 법문) -> 사르나트(녹야원, 여래향실터에서 소참법문, 초전법륜, 법문과 다메크 탑돌이) -> 사르나트 박물관 -> 부다가야 투숙 -> 새벽에 참배하고 예불과 함께 법문 -> 아침 공양 후에 다시 마하보다대탑으로 가서 7.7일 지낸 장소를 다니면서 탑돌이 / 전정각산(가야산?), 네란자라강, 수자타마을 등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지나침 -> 라지기르(마가다국 수도, 왕사성, 영축산, 죽림정사) / 지바카 병원터, 빔비사라왕 감옥터, 칠엽굴 등은 버스를 타고 지나침 -> 나란다대학 승원터 -> 바이샬리 투숙( 유마거사의 고향, 망고동산, 마지막 안거장소 ) -> 아난다 사리탑(대형 스투파와 아쇼카왕 석주, 소참법문 ) -> 케사리아 대탑( 출가 후 삭발한 곳, 소참법문 ) -> 쿠시나가르 열반당( 가사 공양 ) / 사라쌍수, 다비탑에서 예불과 법문 후, 탑돌이 / 춘다집 터 -> 소나울리 국경관문을 통해서 네팔 입국.투숙 -> 룸비니동산 마아대비탑 참배 ( 연못가에서 예불.법문 ) -> 인도로 재입국 -> 쉬라바스티( 코살라국 수도, 사위성 / 오후 늦은 시각에 기원정사에서 예불과 법문 ) -> 이튿날 새벽에 천불화현지( 부처님이 도솔천으로 올라가신 곳 /수닷타 장자 집터, 앙굴리마라 집터 ) -> 오후에 아그라도착, 아그라포트 -> 이튿날 오전에 타지마할 -> 열차편으로 보팔행. 투숙 -> 산치대탑 예불과 법문 -> 산치박물관 -> 인도르( 중간 기착지 ) -> 아잔타석굴 -> 아우랑가바드 투숙 -> 엘로라 석굴 -> 아우랑가바드 공항 -> 델리 공항 -> 인천공항( 25일 정오에 도착 )
매일 아침에 성지순례에 나서면서, 버스 안에서 맨 먼저 남전스님 주관으로 아침 예불부터 올리고, 주요 성지에 도착하면 맨 먼저 남전스님의 주관하시는 예불과 소참법문이 있었다. 이 외에도 자유시간을 주면 흩어지기 전에 경불원 식구들끼리는 모여서 김재영 법사님의 책( 성지순례지역마다 기도문 )을 낭독하면서 명상을 하는 시간을 가진 것도 인상깊다. 아무튼 이번 성지순례는 여타 순례보다 순례 본래 목적에 아주 충실하게 다녔던 것 같다. 특히 순례 중 포교사로서 남전스님과 대화 중, 포교사들이 포교활동을 하면서 불교 핵심에서 벗어나 주변을 맴도는 것 같더라. 그리고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포교사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하는 지적은 새삼 새겨들어 보기도 하지만, 한편 포교현장의 상황에 따라 근기에 맞춘 대기설법 또한 필요함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본다.
그 외에도 인도 문화와 삶의 모습을 보았던 것들이 뇌리에 남아 있다. 끝 없는 평원에 벼와 보리, 밀, 유채, 사탕수수, 면화(중인도지방) 등이 산골에서 커왔던 나에게는 황량하게 느껴졌다. 중인도 산치대탑이 있는 보팔, 인도르, 아우랑가바드에는 산이 보이긴 하였지만 처음에는 토성처럼 멀리서 보였다. 낮은 산이 정상이 城처럼 평평한 것이 특징이었다. 산에는 큰 나무가 별로 없고 건기라 그런지 모두 풀이 말라서 누런색의 산으로 보였다. 들에도 영농을 하지 않는 곳에는 풀이 말라 우리나라 겨울과 같이 보였다.
시골지역을 지날 때에는 아주 작은 힌두교 사원들이 우리나라 교회만큼이나 쉽게 눈에 띄었다. 가끔 이슬람사원이 있긴 하였으나 보기 힘들정도이고,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에 불교사원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에 아이러니하다. 이슬람이 얼마나 잔혹하게 불교를 탄압하고 부수었으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적인 흔적만 남아 있을까. 맨발의 문화는 호텔에서도 실내화를 찾아보기 힘들고, 화장실 문화는 우리의 60년대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보였다. 카스트제도로 인한 수드라와 불가촉천민들이 의외로 순례객들의 길목에는 쉽게 눈에 띄였고, 간난 아기를 안고 구걸하는 여인, 유치원 다닐 또래의 아이들이 걸인으로 나선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다.
불교의 나라 인도에는 불교유적지에 흔적만 남아 있고, 그나마 불교유적지를 복원하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도보다는 아시아지역의 불교단체들인 것 같다. 부다가야의 마하보디탑 주변에는 티벳스님들이 상시 수행장소로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티벳스님 복장에 오체투지를 하면서 수행을 하거나, 노천 천막아래 강당처럼 보이는 곳에서 경전을 읽고 있다. 어떤 스님은 작은 모기장 텐트를 치고 혼자 앉아서 명상에 잠겨 있다. 룸비니나 부다가야 주변에는 한국, 대만, 태국, 일본 등에서 불교사원을 짓고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지구공 위에는 서로 다른 문화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방식이 아주 다른 사람들이 60억 이상이 살고 있다. 그러나 지구의 나이 45억년을 두고 보면, 인류상 발생한 것도 몇 만년 전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가 고대.중세.현대라고 나누고 있지만 이 또한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고, 그 이전의 긴긴 시간동안 불덩이의 지구는 점점 식어가면서 빙하기와 소행성 충돌시기를 거치면서 물속에서 식물과 단세포 동물이 생기면서 오늘날 포유류로 진화한 것이다. 이러한 우주와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우리가 사는 한 평생 100년은 정말 한 순간에 불과하다. 이렇게 짧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보람있게 살다가 갈 것인가?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서 어떻게 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돌이켜보고 싶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