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이런 저런 상념에 사로잡힐 때가 종종 있다. 특히 금년에는 처음 경험하는 전직기회를 맞이 하게 되어서 때로는 착찹하기도 하고, 때로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기분이 가벼워 지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은 순간순간 변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대승불교의 공은 곧 변화를 의미한다. 이 세상에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전이 있고, 위험도 있다. 즉, 변화는 곧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하나의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 기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잘 극복하느냐에 따라서 위험이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배운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큰 발전과 진전이 있겠는가? 어떤 연유에서든 배운대로 실천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지행합일,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큰 발전과 함께 행복이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게을러서, 아니면 현실환경이 여의치 않아서, 그렇지 않으면 욕심이 많아서 등등의 사유로 배운대로 실천을 하지 못하고, 안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게 바람직한 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고, 핑계를 대면서 편리한 대로 살아간다. 한편으로는 상황에 융통성 있게 살아간다고 자기 자신의 언행을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그게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가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변명을 늘어 놓는다.
공의 원리를 머리로는 제대로 이해를 하고 불자로서 신행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지행합일이 되지 않아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의아하게 쳐다봐야 할 경우가 종종 있다. 매월 포살법회에서 참회를 하고서는 다시 신구의업을 짓고, 탐진치에 끄달려 다니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중생들의 일상생활인듯 하다. 그나마 탐진치의 삼독과 신.구.의업을 알고서 짓는 죄가 모르고 짓는 죄보다는 낫다고 한다. 왜냐하면 매월 한 번씩 포살법회에서 참회를 하고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는 "내 것"을 먼저 강하게 챙기다보니, 큰 조직에서 자주 불협화음이 나온다. 각자 다른 소임을 맡아서 봉사하는 봉사자들 간에도 서로 이해를 하지 못 하고, 탐진치에 끄달려 신구의업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기축년 한 해는 한 집단에서 신행활동을 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이런 부분에서 좀 더 나아졌으면 한다.
지행합일, 언행일치, 배운대로 삶을 살아가기, 내 인생의 멘토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의 목적지는 어딘가? 배운대로 순리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2008. 12. 29 원경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