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회활동을 하면서 살아 가는 동안, 어느 집단엔가 속하게 마련이다. 어느 집단에서나 그 집단의 존립목적에 따라 때때로 집단의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의사결정을 할 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수단이 "다수결 방식"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에서 의사결정하는 수단으로서 아주 용이하게 활용이 되고 있다. 작은 동호회로부터 한 나라의 국회나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이 수단을 자주 사용한다.
다수에 속한 경우에는 느끼기 어렵지만 소수에 속한 경우에는 의사결정할 때마다 난감한 입장이 되게 마련이다. 다수의 의사대로 모든 의사가 결정지어 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에서도 여소야대라고 해서,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경우에 여당이나 행정부에서 제안하는 각종 법률이나 국책사업 제안이 거부되기 일쑤다. 그래서 그 나라의 정국이 혼미에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수와 소수가 항상 존재하게 마련인데, 다수결이라는 의사결정 수단을 유일한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구조적으로 다수가 소수를 이길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다수의 횡포가 자행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 되는 경우가 바로 독재가 되는 것이다. 조직 운영은 다수에 의한 독재가 되는 것이다. 다수에 속한 멤버들은 전혀 느끼지 못 하는데 반해서 소수에 속한 멤버들은 늘 불만스럽고 짜증스러은 입장이 되어서 다수에 대해서 반대를 위한 반대 투쟁을 함으로써 아주 비효율적인 조직운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어느 집단의 한 멤버로서 활동을 하면서, 소수에 대한 배려 내지는 그 입장을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하지 않을 못할 경우, 그 모임은 깨지게 마련이다. 설사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는다 손치더라도 그 모임의 의사결정은 부패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종종 봐왔듯이 건전한 소수의 견제가 없다면 다수는 언젠가는 부패의 길을 선택하게 되고, 소수는 매사를 포기하고 그 집단에 소속감 결여, 충성심 결여 현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 집단은 비효율적인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내 주변의 단체를 통해서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을 해왔다. 꼭 이러한 점을 꼬집지 않더라도, 여유가 있는 다수가 소수의 입장을 배려한다는 것은 얼마나 보기에도 좋은가? 나보다 입장이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것이 바로 보시행위가 될 것이다. 대체적으로 다수의 입장을 반영해서 조직을 운영하더라도 때로는 소수의 입장을 반영한 의사결정을 한다던지, 아니면 소수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배려가 있어야만, 다수와 소수가 조화롭게 한 지붕아래서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다수가 소수를 배려함으로써 조직은 효율적으로 운영이 되고, 구성원들간에는 기분 좋게, 집단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참여도를 높이고, 목적달성을 위한 활동도 제고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언제 다수에서 소수의 입장될지 모른다. 어떤 경우에는 다수의 입장에서 어떤 경우에는 소수의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수와 소수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함께 노력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2007.10.8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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