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삶이 곧 수행 2

圓鏡 2007. 9. 16. 22:18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이 곧 수행이다. 왜냐하면 육바라밀 중에서 인욕바라밀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우리는 늘 인욕바라밀을 수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 맘에 들지 않지만 그대로 참고 넘어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 중생들이 살아가는 사바세계는 이렇게 유지되어 가는 것이다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사바세계의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기가 힘들 것이다. 그와 반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취하는 오욕락만 생각해도 무질서로 인해서 이 세상이 엉망이 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어떨까?  이것도 역시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 것이 뻔하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가면 이 세상은 여럿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예의와 예절, 매너, 도덕성을 따지고 있고, 이것으로 안 되는 부분을 법으로 규정하여 통제를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혼자서 살아가는 공간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둘 이상이 살아가는 공간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필요하다. 그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내가 소중하듯이 상대방 역시 소중한 존재이기에 이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주말은 비가 내리는 금요일이었다. 평소에 금요일 저녁에 자가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출퇴근을 하는데, 지난 주말에는 평소와는 사정이 달라서 운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주말인데다가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두 시간 반이 걸려서 집에 도착하고 보니, 기운도 빠지고 시간도 아깝고.... 도심에서 왜 자가운전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주말은 평일과는 달리 교통체증이 훨씬 더 심각하다. 자가운전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경제성이 낮다.  이동시간, 유류비, 차량 감가상각비, 차량유지비, 운전하는데 소요되는 에너지와 스트레스 등을 고러하면 도심에서 운전은 하지 않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시외 장거리 이동 시에도 경제성이 낮다. 단지 시골지역인 경우, 도착해서 현지에서 이동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긴하다. 단순히 경제성만 따진다면 그런 곳에서는 렌트카를 이용하거나 지방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노약자나 아이들이 있다면 단순히 경제성만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1800만 가구마다 한 대씩의 차량을 보유하고, 이제는 두 대의 차량을 보유하는 집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앞으로 교통체증이 더욱더 심화될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이 뻔하다. 이러한 것들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사람이 직접 일일이 이동해서 현장에서 볼 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PC통신을 이용해서 쇼핑을 하고, 비데오 전화를 통해서 안부를 묻고 전화통화를 한다. 사람이 꼭 참석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통신으로 대체하는 세상이 도래되어야 교통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인터넷 통신망이 잘 된 국가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교통체증이 심화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매사가 우리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또한 그러한 사례의 하나인가?  아니면 그나마 이정도의 통신망이 갖추어지지 않았더라면 교통체증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 되었을 것인가?

 

2007. 9. 16   원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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