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소중한 한 끼의 식사

圓鏡 2007. 7. 15. 17:10

 

오늘처럼 한 끼의 식사가 소중해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지난 2005년 1 여년간 일주일에 한 번씩 불서 독서반에서 공부하였던 그 서울노인복지센타(안국역 부근)에 1년 반 만에 그 노인들의 봉사자로 방문하게 되어 감회가 깊었다. 그 당시에는 늘 노인들이 안 계시는 밤에만 다녔기에, 복지회관의 규모를 제대로 알 수가 없었지만, 오늘은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체험을 해서 알 수 있었다. 하루에 3천명의 노인들이 무료로 이용하는 이 복지관에서는 하루에 2천명에게 점심 한 끼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 봉사활동은 포교사 연수과정에서 요구되어 지는 코스로써 한 달 전부터 봉은사 불교대학 도반들과 함께 예약해 놓았던 것이다. 이 복지관에는 전국에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줄을 서 있다고 한다. 요즈음 세상이 이렇게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연유에서 건, 많은 사람들이 지역사회의 봉사활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의미는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11시 반, 맨 처음으로 입장하는 순간은 나에게 아주 엄숙하고 장엄하게 느껴졌다. 아주 감동적이었다. 아침부터 일찍 나와서 ( 아마도 식권배포 때문인 듯 ) 긴 시간 동안 식당 문밖, 복지회관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사회복지사의 안내 방송에 따라 식당 문이 열리면서 식당으로 들어서는 노인들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노인들 중에서도 85세 이상의 연장자들이 먼저 입장을 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비교적 건강한 편이긴 하지만, 중풍으로 지팡이를 짚고, 불편한 몸을 스스로 끌고 씩씩하게 입장하는 모습에서 코 끝이 찡해옴을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이 되어서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한 끼의 식사가 이렇게 소중한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봉사자 중에는 71세인 할아버지가 계시지만, 이 나이면 여기서는 젊은 나이라고 한다. 그나마 이 자리까지 찾아와서 점심 한 끼를 드시고 가는 노인분들은, 행복하신 분들이라고 도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건강하니까 여기까지 혼자서 찾아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여기서 무료급식을 제공 받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60세 이상의 노인으로서 회원 가입을 해야한다고 한다. 이 복지관에서 특이한 점은 평균나이가 80세 이상으로 아주 고령이라는 점과, 75%이상이 할아버지라는 점이라고 한다. 할머니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나이들수록 할아버지는 집에서 할 일이 별로없지만, 할머니는 그나마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나오는 노인들 중에 적지 않은 분들이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 불편해서라고 한다. 이렇게 나이 들어서까지 자식들과 맘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가시는 노인들의 맘이 어떠하실까?  지난 날을 되돌아 보면서 후회를 하고 있으실까?  아니면 자식들을 원망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시는 걸까?  대체적으로 나이에 비해서는 비교적 건강해 보이고, 외모도 깔끔하게, 단정한 모습으로 점심식사를 하시고는 모두 어디론가 돌아가셨다. 아마도 종로에 있는 종묘공원이나 탑골공원으로 가셔서 오후 시간을 소일하시다가 하루 종일 대지를 달구던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 때 쯤이면 귀가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어떤 노인들은 경기도 먼 곳에서 두 시간이상 차를 타고 여길 찾는다고 한다. 집 근처에 있는 복지회관에는 서로 아는 사람이 많아서 일부러 멀리 이곳까지 찾는다고 한다. 이 곳은 집에서 멀고, 수 천명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니까 익명성이 보장되어서 지내는데 있어서 맘이 편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2천 여명의 급식자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는데 소요되는 봉사자는 하루에 50여명, 나는 도반들과 함께 설거지 봉사조에 편성되었다. 먼저 파랑색 긴 앞치마( 발 끝까지 덥히는, 백화점 어물전에서 보던 모습)를 두르고, 장화를 신고, 면 장갑을 끼기 전에 긴 팔찌부터 먼저 끼고난 후에 고무 장갑을 그 위에 낀다. 모자는 생략하고…. 이제 설거지 하는데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다. 완전무장이 된 상태이다. 먼저 자원봉사자들이 11시경에 점심식사를 마치고, 11시 반 식당 문이 열릴 때에는 설거지 조도 정해진 각자의 위치에 자리를 잡고 대기하고 있었다. 설거지 조는 모두 12명인데  나는 자동 식기 세척기에 식기를 밀어 넣는 임무를 맡았다. 가끔 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좋긴 하였지만, 무거운 식판을 옮겨서 뜨거운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가끔은 뜨거운 물까지 얼굴에 튀기는 식기 세척기 입구에 식판을 세워서 넣어야만 했다. 오늘은 삼복 중에서 초복인데, 이열치열 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아무튼 시작한 일이니 2천장의 식판을 한 번씩은 차곡차곡 밀어 넣어야 한다는 각오를 하고 시작했다. 초대형 식기 세척기에 플라스틱 잇빨들이 많이 부러져 있어서 사용하기에 다소 불편했다. 왜 이런 것들이 이렇게 많이 부러져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내가 그런 사고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식판이 아닌 다른 주방기기들도 세척과 함께 살균 목적으로 세척기에 밀어 넣는다. 이 때 커다란 주방기기 하나를 넣으면서 주의사항을 듣고서도 주변이 산만한 상황에서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 듣지도 못 해서, 바로 사고를 낼 뻔 했다. 다행히 식당 관리인이 급히 세척기 작동을 급히 멈추고 문제의 큰 주방기기를 빼내긴 하였다. 11시 반부터 시작된 배식은 오후 1시반경 끝나고, 식기 세척을 마무리하고 나니 오후 2시가 되었다. 설거지 하기 위해서 무장했던  것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마지막으로 숟가락 젓가락 정리하고 오후 세시가 넘어서 귀가했다.

 

이 식당에서 평소에 일하시는 분들은 아이러니하게 두 가지 기분을 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바뀌는 자원봉사자들인지라( 가끔은 자주 보는 얼굴도 있겠지만 ) 초면이라 신선한 기분도 들겠지만, 모든 것이 서툴고 익숙하지 않아서 저지르는 실수도 있을 것이기에 불편한 기분도 들 것 같았다. 아무튼 봉사라는 것은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오늘도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한 끼 식사의 소중함, 건강, 가족의 소중함, 집에서 가사일 돕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 노후대책 등등……….. 오며 가며 전철간에서는 사 놓고 몇 달간 방치해 놓았던 와인에 관한 책을 읽었다. 오늘 저녁에는 와인을 한 잔 하면서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다.

 

2007. 7. 15  원경합장

 

어제(7/29일)도 도반들과 함께 서울노인복지센타에서 점심배식 봉사를 하고 왔다. 11시반부터 배식이 시작되면, 거의 기계적으로 몸을 놀려야 하는 바쁜 시간대가 있고, 그 시간에는 나에게 주어진 그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그 순간만은 번뇌망상으로부터 벗어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할 수 있다. 어제는 점심시간대에 소나기가 내리면서 바람이 많아서 그런지 식사 인원은 1500명 정도였다고 한다. 아무튼 노인답지 않게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시는 노인들을 보면서, 역시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노인들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죽는 그 날까지 건강하시길 기원해본다. 나무관세음보살. 

 떡국 배식하던 날

 

떡국 배식하던 날 ...... 다음 날, 손목이 시큼시큼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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